법정스님의 친필
길상사 법정스님
오래전, 법정 스님이 입적하고 서울 성북동 길상사를 찾았을 때였다. 스님의 친필 원고 앞에 섰을 때, 한동안 행복해했던 순간이 있었다. 친필 원고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나온 자취를 되돌아보니, 책 읽는 즐거움이 없었다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싶다. “
스님의 글귀는 마치 나를 향한 속삭임처럼 들렸다. 나 또한 지금까지 책 읽는 즐거움이 없었다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싶다. SNS프로필에는 “읽고 쓰는 즐거움은 신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고 자뻑성 멘트를 쓰기도 한다.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법정 스님 관련 한가위 특별 방송을 뒤늦게 보았다. KBS 아나운서 출신 이계진이 길상사를 거닐며 스님을 회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계진 아나운서의 부드러운 음성을 들으며 잔잔하게 프로를 감상하는 데, 법정스님의 사진이 클로즈업되었다.
고요와 한적
서재에 앉아 글을 쓰는 스님의 고요한 모습이었다. 덕조 스님께서 불일암에 있을 때 직접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처음 길상사를 방문했을 때 보지 못했던 사진이었는데, 내가 빠뜨린 사진인지도 모르겠다. 스님의 사진에는 고요와 평온이 가득했다. 특히, 사진 아래 적힌 스님의 한 마디가 눈에 띄었다.
“오랜만에 홀로 있는 내 자리를 찾았다. 이 고요와 한적을 무엇에 비기리. 절대로 간소하게 살 것. 날마다 버릴 것.”
최저시급 정도의 업무와 연금으로 반은퇴 상태 생활을 하고 있는 요즘, “고요와 한적을 무엇에 비기리”라는 문장이 내 마음을 울렸다.
시골집 마을의 매력
광주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시골집. 소록도가 건너다 보이는 고흥반도 끝자락, 녹동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여느 시골처럼 젊은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7, 80대 노인들이 소일거리 삼아 벼를 심고 밭을 일군다. 시골이면 으레 보이는 냇가도 없고 농토도 넓지 않은 척박한 마을이다.
시골집은 내가 태어난 곳이 아닌 아버지의 고향이기에 동네 어른과 마주쳐도 서로 누구인지 모른다.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일 정도이다. 나를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내가 마을 산책을 나가지 않으면 한마디 말도 않고 하루를 보낼 수가 있다. 익명의 대중성이 보장되는 시골집이라 , 나에게는 고요한 안식처와 같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광주와 시골집을 오가며 ‘5도 2촌’ 생활을 했다. 어머니가 떠나고 빈 집이 된 시골집을 요즘은 자주 드나든다. 일주일정도 혼자 머물다 가지만 앞으로는 매월 보름정도 머무를 계획이다. 다행히 비대면 업무가 가능한 IT업무이기에 가능한 시골생활이다.
한적한 시골집의 자유와 평온
오늘도 두 칸짜리 시골집 마루에 앉아 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마당을 내다보며 글을 쓰고, 눈이 피로하면 초록빛 산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해가 지면 적막강산으로 바뀌는 밤에는 맥주를 곁들여 혼술을 즐긴다. BGM으로 좋아하는 음악은 필수이다.
법정 스님 책에서 읽은 말씀이 떠오른다.
“마실 차가 있고, 읽을 책이 있고, 듣고 즐기는 음악이 있음에 저절로 고마운 생각이 들고 오두막 살림살이 이만하면 넉넉하구나 싶다.“
스님의 말씀처럼, 나 역시 “고요와 한적” 속에서 작은 행복을 느낀다. 혼술에 취해 고독감이 밀려올 때도 있지만, 결코 외롭지 않다. 언젠간 아내와 함께 시골집에서 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