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시대의 글쓰기


SNS시대의 글쓰기

SNS시대의 글쓰기는 공적 공간의 글과 사적 공간의 글로 나누고 있다. 일반인에게 공적인 공간의 글이란 주로 산문을 쓰는 것이며, 사적인 공간의 글이란 자유게시판에 올리는 글과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은, 진실한 내용을 아름답게 쓰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작가든 독자든 인간정신의 자유스러움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 자유스러움이 개성인 것이다.

글쓰는 IT 개발자

나의 직업은 IT 개발자이다. 컴퓨터와 모니터를 하루종일 끼고 산다. 퇴근 후 집에서도 습관적으로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인터넷 웹사이트 접속이 자연스러워 웹상의 글을 자주 읽고 올리는 편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에서도 글쓰기가 용이하기에 출장 중 버스에서나 한 잔을 차를 마시는 커피점에서도 글을 쓸 수가 있다.

야근을 많이 하는 직업이다 보니 작업이 끝나고보면 밤이 깊어진다. 깊은 밤에는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서인지 쉽게 감정이입이 이루어져 음악을 감상하며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작품을 위한 글을 쓴다기 보다도 일종의 일기를 쓰는 것과 같은 자기 고백적인 분위기의 글을 쓰는 것인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더러는 너무 비약적인 표현과 과장된 표현이 표출되기도 한다.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글

SNS상에서 글을 쓸 때는 크게 공적 공간의 글과 사적 공간의 글로 나누고 있다. 공적인 공간의 글이란 주로 산문을 쓰는 것이며, 사적인 공간의 글이란 자유게시판에 올리는 글과 같은 것이다. 수필을 쓸 때에는 나의 경험담을 토대로 보편적 가치를 지닌 객관적 관점으로 글을 쓰지만 자유게시글은 주관적 관점에서 글을 쓰게 된다.

어떤 방식이든 쓰고 나면 아쉬움이 생긴다. 전자는 작품으로서 빈약함을 느끼게 되는 아쉬움이고, 후자는 개인감정이 너무 드러나는 아쉬움이 있다.

개인 블로그에 수필을 올렸을 때의 답글과 자유게시글을 올렸을 때의 답글 반응이 다르다. 수필에 붙는 답글은 대체적으로 답글자 또한 객관적인 입장에 동화되어서인지 악평에 가까운 부정적인 답글이 없는 편이지만, 자유게시글의 답글은 악평에 가까운 글들이 스스럼없이 올라오기도 한다.

카카오스토리가 처음 발표될 무렵이었다. 때마침 우리 회사에서도 용역을 의뢰받아 개발 중인 내용이 카카오스토리와 비슷한 형태의 프로그램이었다. 시뮬레이션을 위해 여러 기능의 사진과 글을 수시로 올렸다.

일상의 단상을 올리거나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올리는 등 포토에세이 형식을 빌어 주제에 맞는 사진과 글을 게시했다. 평소 인적네트워크가 넓지 않기에 처음엔 나 혼자만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SNS특징인 간접적인 관계의 지인이 생기고 내 스토리에 하나 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상이한 답글의 SNS 반응

지인들의 방문이 시작되었다. 평소 장난기 많고 농담이 많은 나의 분위기와 게시글에서 느끼게 되는 나의 분위기가 달랐던 모양이다. 어느 날부터 지적사항이 많아지는 것을 느꼈다. 나의 글은 예민하고 여성스러운 감정을 지녔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분위기가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견과 유치한 유행가 가사가 될 거라는 의견으로 양분되었다. 평소 내 자신의 철학보다는 인용구가 많다는 지적도 해왔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체로 제삼자를 위해 행복을 노래하지만, 실상 자신은 위선과 아집의 벽 속에 갇혀 글을 쓰는 것 같다는 아쉬움도 전해왔다. 수긍가는 이야기였다.

이 무렵 나는 개인 수필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간에 써놓은 30여 편의 수필을 재정리하고 추가로 30여 편의 수필을 새로이 쓰고 있었다. SNS에 올라오는 지적사항들을 염두에 두며 한 편 두 편 써 나가기 시작했다.

한창기 <뿌리깊은나무>

‘뿌리깊은나무’ 발행인이었던 한창기 사장이 생전에 여러 매체에 올렸던 글을 모은 세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만연체로 쓰인 그의 문장 자체에서는 문학적인 아름다움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주제가 또렸하였고 소재 하나를 검증하는 데도 자료수집을 꼼꼼히 하여 지식공유가 가능한 문장을 보여줬다.

거기에 비해 내 글은 너무 정보성 지식으로만 표현된 깊이 없는 글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의기소침해진 나는 잠시 원고지에서 손을 뗐다.

이석원 <보통의 존재>

이석원의 산문집 “보통의 존재”를 읽고 나서 또 한 번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보통의 존재”의 문장들은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쓰였으면서도 思考의 깊이와 주제는 충분히 보편적 가치가 있는 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 나의 글은 지식의 열거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책을 하게 되었다.

난 수필집 집필을 중단했다. 그리고 글쓰기에 대해서 전면 재검토를 하기에 이르렀다.

수필집 <마이너리그에도 커피향은 흐른다>

그로부터 수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글을 쓸 때에는 지식 정보는 간결하게 함축하고 내 개성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다시금 집필을 시작하였다. 얼마 후 나의 처녀작인 “마이너리그에도 커피향은 흐른다(해드림출판사)” 라는 수필집이 출간되었다.

김영배 산문집
김영배 산문집

아름다운 글쓰기의 궁극적 목표

글을 쓴다는 것은, 진실한 내용을 아름답게 쓰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작가든 독자든 인간정신의 자유스러움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 자유스러움이 개성인 것이다. 얼마 전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을 다녀왔다. 문학관 입구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