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과 화성의 영감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화성의 영감

서울 지하철 환승역에 이르면 흘러나오는 음악이 있다. 비발디 협주곡인 ‘화성의 영감 제1악장 6번’ 이다. 화성(和声)의 영감(霊感)은 조화(調和)의 환상(幻想)이라 불리기도 한다.

서른이 되던 해, 서울의 첫 직장에서 일본으로 직장을 옮겨 첫 월급을 받았다. 전자상가가 밀집한 아키하바라에서 당시 유행이었던 SONY CD 플레이어를 샀다. CD 플레이어를 샀으니 음악 CD가 필요했다. 당시에는 클래식에 막 호기심이 생기던 시기였기에 바람이 불거나 비가 와도 시간만 나면 음반가게를 여기저기 들락거렸다.

그때 찾던 CD 중에 유독 찾기가 어려웠던 CD가 비발디의 조화의 환상이었다. ‘화성의 영감’으로만 알고 있었던 곡명이 ‘조화의 환상’으로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직접 물어보았으면 간단히 찾았을 것을 당시에는 일본어도 서툴고 인터넷과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시간 낭비를 많이 한 셈이었다.

 

법정 스님과 화성의 영감 1
일본어가 서툴러 어렵게 찾았던 조화의 환상(화성의 영감)

 

법정스님과 화성의 영감

‘화성의 영감’을 감상하노라면 가끔씩 법정스님이 떠 오른다. 나는 전작주의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던 법정스님의 글을 좋아했다. 법정스님의 인도기행기에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보고 ‘오, 안나푸르나’ 라고 감탄하는 문장이 있었다. 평소 스님의 글에서는 조그마한 흐트러짐이나 유머를 찾아볼 수가 없었기에 안타푸르나에 대한 감탄 문장이 무척이나 살갑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불일암 마루에 걸려있다는 안나푸르나 사진이 무척 궁금했다.

자동차도 없던 총각시절, 주말을 이용해 시외버스를 타고 나 홀로 송광사 불일암을 찾아갔다. 과연 불일암의 마루에는 안나푸르나 사진이 조그마한 액자에 넣어져 걸려 있었다. 한참 동안 안나푸르나 사진을 바라보는 데 스르륵 방문이 열리면서 스님과 눈이 마주쳤다. 법정스님이었다.

워낙 침묵을 원하는 스님이기에 말없이 눈인사만 했더니 ‘구경하고 가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어딘가로 내려갔다.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는 수류화개의 마당, 전생에 목수였을 것 같다면서 만든 나무의자, 다락 창문으로 보이는 책자들. 부엌의 조그마한 2단 찬장. 법정스님의 간결한 손길이 느껴졌다.

후박나무를 지나 불일암 옆 바위에 걸터앉았다. 조계산과 송광사를 내려다보며 CD플레이어를 꺼내어 이어폰으로 음악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비발디의 ‘화성의 영감’이었다. 바위에 누워 한참을 감상하고 있는데 법정스님이 다시 불일암으로 올라왔다. 나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때 법정스님의 눈빛에서 무언의 한 마디가 느껴졌다.

‘산사에 왔으면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정화해야지, 무슨 CD를 듣는가……쯧쯧‘

라는 아쉬움의 소리를 하는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흘러 법정스님의 신간을 읽으면서 흠칫 놀란 적이 있었다. 산사에서 자연의 풍광을 감상하지 않고 일행들끼리 그저 떠들기만 하거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토로하는 글이 있어서였다. 산사에서 CD음악을 듣는 사람이 나였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나로서는 그때 법정스님의 아쉬움에 찬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이후 불일암을 몇 번 더 찾아갔다. 두 번째 불일암을 찾았을 때에는 인근 암자에서 신문을 보고 계셨고, 다시 불일암을 찾았을 때에는 ‘버리고 떠나기’ 산문집을 출간할 즈음인지 강원도 화전민이 살았던 깊은 산속으로 떠나고 안 계셨다. 법정스님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열반에 든 송광사 다비장에서였다.

참나무 장작으로 둘러싸인 스님에게 ‘스님 불 들어갑니다’ 라는 소리가 왜 그리 서럽게 느껴지던지. 극락왕생을 염원하며 다비장을 내려오는데 인생무상 제행무상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법정스님의 미니멀리즘

비발디의 ‘사계’ 보다는 덜 알려져 있는 ‘화성의 영감’은 두 장의 CD로 녹음된 긴 음악이다. 오늘은 아키하바라에서 구입했던 이 무지치(I Musici)의 연주곡으로 감상을 한다. 그리고 조용히, 법정스님의 미니멀리즘을 생각한다.

음악이야기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