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도2촌] 시간을 덧칠하는 시골집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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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창 너머, 시간을 덧칠하는 풍경     

고요 속의 평온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주황색 대문을 열고 들어선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정겹다. 예전에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던 자리에는 고요만이 맴돌고 있다. 빈집이 된 시골집은  시간이 멈춰버린 듯 공허하다. 하지만 고요함 속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낀다.     

올해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떠난 후, 종종 나 홀로 시골 빈집에 온다. 도시에선 느낄 수 없는 고요함과 넉넉한 자연에 젖기 위해서이다. 텅 빈 방은 마치 흰 도화지 같아서, 그 안에 나만의 시간을 채워 넣을 수 있는 자유를 준다.

적막으로 가득 차 있는 시골집의 백색 소음을 위해 TV를 켠다. 청소를 하고, 밥을 짓는 냄새가 풍기면 의외로 평온한 온기가 느껴진다.

모닝 커피 향과 음악

시골집 아침 마당엔 햇살대신 집 그늘이 마당을 덮고 있다. 서향집인 까닭이다. 마당에 나가 맨손체조와 간단한 기구 운동을 하고 커피를 내린다. 그윽한 커피 향이 집안 가득 퍼져나간다. 이 순간이 나는 좋다.

창밖으로 나지막한 산과 작은 논밭이 펼쳐져 있다. 커피잔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KBS라디오 FM을 켠다. 잔잔한 음악을 듣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진행자의 멘트에도 귀 기울이며 독백으로 사연을 보내보기도 한다.     

소박한 식탁 마음을 채우는 독서

아침은 모닝커피로 대체하고 점심과 저녁은 간단하게 해결한다. 편식과 초딩입맛을 가진 나로서는 소박한 식탁을 선호한다. 요리가 젬병이기에 시골집에서는 주로 밥과 김치, 밀키트형 된장국 또는 찌개로 식사를 한다. 가끔 김, 소시지, 계란을 먹기도 하고 읍내 가는 날에는 삼겹살을 사와 상추쌈을 하기도 한다.     

시골집에서의 주된 생활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멍때리기를 한다. 마당이 내다보이는 책상에 앉으면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진 듯하다. 집돌이 취향인 나에게 안성맞춤의 환경이고, 읽고 쓰는 즐거움은 신이 내게 준 선물이라 여기는 자뻑에 빠지기도 한다.  

[5도2촌] 시간을 덧칠하는 시골집 풍경 1
길고양이 ‘쿵동이’

길고양이와 따뜻한 교감

오후의 햇살이 설핏해지고 저물어갈 때쯤이면 길고양이들이 찾아온다. 앙증맞은 발걸음으로 다가와 야옹거린다. 미리 준비해 둔 고양이 사료를 그릇에 담아준다. 어머니는 길고양이를 싫어했다. ‘짐승에게 정 주지 마라’는 당부도 했지만 이렇게 추운 날 찾아온 길고양이를 외면할 수가 없다. 처연한 길고양이 눈망울을 보면 더더욱.     

고요한 밤 나를 찾는 시간

이내 창밖은 어둑해지고 시골집은 차가운 형광불빛으로 가득 찬다. 시골의 밤은 도시에 비해 빨리 찾아들고 적막강산이 된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고요함 속에서 나 자신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단순한 시골집 생활이지만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내 마음은 어땠는지 이런저런 상념에 젖는 순간을 즐긴다.

[5도2촌] 시간을 덧칠하는 시골집 풍경 2
적막강산 시골집

마음의 정화 미니멀리즘 

시골집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목공이었던 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체취가 남은 시골집을 아끼고 사랑했다. 어머니의 손길이 닿은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추억이 깃든 것도 있지만, 이제는 필요 없는 물건들도 많다. 

요즘 시골집의 불필요한 물건들을 하나둘씩 버리고 있다. 미니멀리스트인 나로서는 묵은 때를 벗기는 것처럼 후련하다. 마음까지도 가벼워진다.      

시간을 덧칠하는 풍경

시골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법정스님이 이야기했던 ‘텅 빈 충만’을 느낀다. 고독함 속에서 오히려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시골집의 풍경은 낡은 그림이 되어 가지만, 오늘도 나는 이 풍경 속에 시간을 덧칠하며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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