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의 귀환
사자(死者)의 기다림
동남아의 청년들은 그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다시금 불사조처럼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영화 ‘사망유희’에서처럼 죽음을 가장하고 우리 곁에서 잠시 사라진 것이라 생각했다.
나 또한 어린 시절에 그의 주검을 영상과 사진으로 똑똑히 보고서도 언젠가는 부활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만큼 그는 어린 시절의 나의 우상이었고 너무 아까운 죽음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10년, 20년을 기다려도 무술인이자 영화배우였던 이소룡은 결국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사람이란 한 번 죽으면 영원히 끝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만이 걸렸을 따름이었다.
통신업체 A씨의 귀환
나는 죽은 사람이 정말로 살아오는 현실을 체험하였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나 경험하였다.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되어 전 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내가 근무하던 회사도 예외가 아니어서 부득이 일본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우연히 지인들과 술좌석에서 A씨가 위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들었다. A씨는 통신업체에 근무하는 팀장으로 우리 전산팀과는 유대가 돈독하였다. 위암이면 중병인지라 당시에는 입원소식 자체가 부고 소식으로 들렸었다.
우리나라가 IMF를 극복하고 벤처 열풍이 뜨거울 때 나는 귀국을 하였다. 다시 돌아온 광주에서 예전 직장동료와 IT업체를 창업하였다. 사무실을 임대하고 인터넷 통신망을 구축하기 위해 통신업체에 가입신청을 하였다. 그러면서 위암으로 아까운 생을 마친 통신업체 A씨를 생각하였다.
며칠 후, 통신사 직원들이 오는 날이었다. 통신케이블과 장비를 지닌 통신사 직원들이 사무실로 들어서는 데 한 사람의 얼굴이 낯익어 보였다. 그리고는 순간적으로 내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A씨였다. 예전보다 얼굴과 몸은 많이 야위어있었지만 A씨임에 틀림없었다. 난 속으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온 듯한 흥분된 마음으로 A씨와 악수를 나누었다.
위암수술에 성공하여 건강을 되찾은 A씨 또한 내가 일본으로 직장을 옮겼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며, 오늘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을 몰랐다며 반가워했다.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데 내 마음 속에는 사자(死者)와 이야기를 하는듯한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골프 연습장에서의 놀라운 재회
골프를 배우면 인생이 즐거워지고 사업을 하려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골프를 배우는 게 좋다는 지인의 권유로 골프레슨을 받을 때였다. 난 항시 실내 연습장에서는 습관적으로 첫 번째 타석에서 연습을 하였다. 앞사람 뒤에서 연습을 하면 앞 사람의 움직임 때문에 시야의 집중이 잘 안 되기에 항시 첫 번째 타석에서 벽을 보고 연습을 한다. 내 등 뒤로는 다른 회원들의 연습하는 모습이 정면으로 보인다.
어느 날 부터인가 스윙 임팩트 때 “쉬~”하는 기합을 넣어가며 연습하는 주부가 있었다. 다른 회원 중에는 스윙 임팩트 때 기합을 넣는 분들이 없었기에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는 주부였다. 그 주부는 나와 연습시간이 비슷해 자주 만나는 편이었는 데, 어느 날부터인가 연습장에서 보이질 않았다.
레슨기간이 끝났나 싶어 레슨프로에게 물어보니 얼마 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기합까지 넣어가며 그토록 열심히 연습하였던 분이 교통사고라니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일요일 아침의 실내연습장에는 언제나 내가 제일 먼저 도착을 했다. 나는 평소 밝은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실내전등을 끄지 않는 데, 연습장의 레슨프로는 절전의식이 강해 회원이 적으면 연습하는 내 타석만 실내등을 켜 주었다. 나 혼자 연습 중에 등 뒤로 돌아보면 실내가 어두침침하기만 했다.
이날도 일요일 이른 아침 어둑한 상태에서 연습에 몰입하여 땀을 흘리고 있는 데, 누군가 등 뒤에서 스윙 중에 기합소리를 넣는다. 열심히 연습하는 사람이 새로이 왔구나 생각하고 연습에 몰두하는 데, 기합소리가 왠지 귀에 익은 소리라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 궁금해서 뒤 돌아 본 순간 나는 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바로 얼마 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던 그 주부가 아닌가. 또 사자(死者)의 모습을 본 것이다. 난 순간적으로 움찔하면서 타석을 내려왔다.
태연하게 그 주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휴게실에 앉았다. 그 주부의 교통사고 소식은 오보였던 것이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환생한 듯한 그 주부의 연습 모습을 바라보며 인간의 生과 死를 생각해 보았다.
인생의 순환과 생과 사에 대한 고찰
한때 기업체에서 정신교육의 하나로 나의 장례식이란 테마로 실제 관속에 들어가 염불 또는 찬송을 듣는 체험을 하는 교육이 있었다. 섬뜩한 교육이지만 체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약간의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반추하고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된다고 한다.
우주비행사들도 우주에 나가 지구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種)에 대한 의무감을 느끼고, 자신의 이기(利己)가 소실되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스티브잡스는 언젠가 “타인의 기대, 자부심, 좌절, 실패등 세상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덧없이 사라지고 오직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는다”고도 하였다.
두 사람의 환생에서 나는, 그들이 죽었다고 느꼈을 때는 덧없는 인생을 느꼈었고 다시 환생을 바라보는 순간에는 덧없는 인생이 환희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삶을 더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의미
인생의 종착역에서나 하는 생각의 가지치기를 살아있는 동안에도 할 수 있다면 피동적인 삶이 아닌 좀 더 능동적인 삶이 되지 않을까 한다. 살아 있다는 건 분명 축복받을 일이고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