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음악가 묘역을 찾아서


나 홀로 비엔나 여행(제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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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

클래식 팬들에게 연초는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전 세계에 위성 중계되는 신년음악회는 “Prosit Neujah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정중한 새해 인사와 함께 한 해를 시작하는 감동의 순간이다.     

나는 TV 중계보다는 극장에서 감상하는 신년음악회를 더 선호한다. 와이드 스크린과 압도적인 음향 효과가 TV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음향 시설이 잘 갖춰진 음악홀에서 위성 중계를 보고 싶다.     

비엔나는 왈츠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가 전 세계적인 새해 이벤트로 자리 잡은 데에는 경쾌한 왈츠의 역할이 컸는데, 요한 슈트라우스 가족의 왈츠 선율은 송년 음악회를 신년음악회로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왈츠는 송년의 밤보다는 새해 아침의 밝고 경쾌한 분위기와 더 잘 어울리기에 말이다.     

이번 비엔나 여행에서는 음악회에 참가할 일정이 없지만, 그럼에도 비엔나가 음악의 도시임을 느끼고 싶다. 겉으로 보이는 여행자의 눈에는 음악 보다 역사적 사실의 자취가 눈에 띄는데, 국립오페라극장 연주회나 파티에 참가한다면 음악의 도시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나의 클래식 사랑

20대가 끝날 무렵,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대중가요와 멀어졌다. 30대를 도쿄에서 시작하며 첫 월급으로 세계적인 히트상품이었던 소니 CD플레이어를 샀고, 주말이면 레코드 가게를 기웃거리며 클래식 CD를 모았다. 나의 클래식 사랑의 시작이었다.      

그때 비엔나 어느 공원묘지에 베토벤, 슈베르트의 묘와 모차르트의 가묘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마음먹었고, 오늘 그 꿈이 이루어졌다. 드디어 음악가가 잠들어 있는 중앙묘역(Zentralfriedhof)을 찾아간다.     

비엔나 음악가 묘역을 찾아서 1
비엔나 중앙묘역(Zentralfriedhof)

비엔나 음악가 묘역(Zentralfriedhof)

중앙묘역으로 가는 교통편은 71번 트램의 Simmering역이다. 마침 흐린 날씨가 추모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안개가 자욱했다면 더욱 환상적이었을 거라고 상상하며 음악가 묘역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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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묘지는 우리나라와 달리 공원처럼 조성되어 일반인의 휴식처 역할도 한다. 추모를 마치고 나면 공원묘지를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라이딩을 즐기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여행자들이 비엔나 중앙묘지를 찾는 이유는 대부분 음악가 묘역을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나도 그렇다. 일반인과 예술인의 구획이 쉽게 구분되어 있고, 입장료는 무료이며 오디오 가이드와 자전거 대여도 가능하다.     

중앙대로를 따라 걷다 보니 “Musiker” 안내 푯말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음악가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푯말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사진에서 익숙한 베토벤의 묘비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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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중앙묘지 음악가 묘역(MUSIKER) 입구 푯말

MUSIKER

비엔나 음악가 묘역을 찾아서 3
(좌로부터)베토벤,슈베르트,브람스,모차르트 가묘

베토벤

베토벤의 묘비는 메트로놈을 닮았다. 아마도 음악가 중에서 베토벤이 메트로놈을 선도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마음속에는 BGM으로 <운명 교향곡>이 세 번의 노크를 시작한다. 숙연한 마음으로 베토벤 묘비에 가까이 다가선다. 나에게 클래식 사랑을 안겨준 음악가 중의 한 사람이기에 설렘의 마음이 가득하다.

슈베르트

슈베르트는 죽으면 베토벤 옆에 묻히고 싶어 했다. 그의 소원대로 베토벤 옆에 잠들어 있다. 키가 작고 똥배가 나왔다는 슈베르트의 묘비는 여인보다 키가 작고, 가슴 이하는 생략되어 조각되었다.     

브람스

브람스의 묘비를 보니 클라라가 먼저 떠오른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브람스의 머릿속으로 여전히 스승인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그리워하는 듯하다.     

모차르트 가묘

모차르트 가묘의 묘비 위에는 여성이 조각되어 있다. 이 여성은 모차르트 사후의 영광을 오늘에 있게 한 사람은 모차르트 부인일 것이다. 모차르트 부인은 홋날 재혼은 했어도 그의 악보와 유물들을 잘 보관하여 후세에 남겼다. 마치 고흐의 동생 테오의 부인이 시숙인 고흐의 작품을 잘 보관했듯이 말이다.      

하지만 모차르트 부인이 남편의 유해가 묻히는 장지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다. 당시 전염병이 퍼질 때라고 이야기하고, 그날 비바람이 불고 날씨가 안 좋아서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 묘비 위의 여성 조각이 모차르트 부인이라면 한 번쯤 눈총을 주고 싶은 심정이다.       

비엔나 음악가 묘역을 찾아서 4
(좌로부터)쇤베르크,주페,슈트라우스2세

쇤베르크

쇤베르크의 묘비를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모든 물리학자들이 양자역학을 100% 이해하지 못하듯, 음악가들도 쇤베르크의 12기법을 100%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간혹 듣는다. 일반인은 오죽하랴. 그저 12기법의 이론을 찾아 읽는 정도로 그치는 수밖에. 12기법은 아방가르드한 작곡의 기법이다. 묘지 또한 아방가르드한 형태로 만들었으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주페

음악가 묘역 내에서 주페의 묘비를 찾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지도의 방향을 잘못 봐서인데, 주페는 <경기병 서곡>으로 알려져 있다. 주페의 묘비는 음악가 묘역 입구에서 트럼펫을 입에 문 채 팡파르를 울리는 묘비로 조각되었으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요한 슈트라우스 가족

요한 슈트라우스 가족은 왈츠의 가족이다.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이탈리아를 정복한 오스트리아 장군 라데츠키를 소재로 한 <라데츠키 행진곡>을 만들었다. 신년음악회에 반드시 앙코르곡으로 연주되며, 관객들도 함께 손뼉 치며 왈츠의 흥을 돋우는 곡이다. 그의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을 작곡했다. 이들 부자의 음악은 비엔나가 왈츠의 도시로 기억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비운의 음악가

음악가 묘역에는 내가 모르는 음악인들도 잠들어 있다. 하지만 이곳에는 비엔나 태생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의 묘지가 없어 아쉽다. 하이든의 머리는 사후 뇌과학자와 의사들의 연구용으로 도난까지 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115년이 지나서야 머리를 찾기는 했지만 이곳 음악가 묘역에 그의 묘지는 없다.

이탈리아인이지만 비엔나에서 음악활동을 하다 숨을 거둔 비발디도 공동묘지에 쓸쓸히 매장되었다. 하지만 그곳에 공과대학이 들어서는 바람에 유실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비록 가묘지만 음악가 묘역에 조성된 모차르트 묘비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외롭지 않을 예술인

벤치에 앉아 유튜브 클래식을 이어폰으로 감상한다. 음악가 묘역의 예술인과 비운의 최후를 맞은 예술인을 추모하며 다리의 피로를 푼다. 한참 음악에 잠기다 보니, 베토벤 묘역에서 검은 옷을 입은 중년 여인이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인다. 베토벤은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오후에는 빈 분리파였던 클림트의 제체시온에서 <베토벤 프리즈>를 감상해야겠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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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음악가 묘역을 찾아서 5
비엔나 중앙묘지 음악가 묘역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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