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순례 – 손보저팬 미술관
손보저팬 미술관-고흐 해바라기 논란
일본 파견 근무 때, 손보저팬 미술관-고흐 해바라기 논란을 생각하며 고흐의 7번째 해바라기를 감상했다.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해바라기 그림 6점을 그렸다고 했다. 그림 앞 소파에 앉아 나의 기준에 맞춰 감정을 해보았다.
젊은 날의 노트
내 젊은 날의 노트를 펼쳐보면 침묵의 잿빛에 젖어 있다. 결코 쇼펜하우어에 관심을 두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청춘의 끓는 피가 느껴지지 않는다. 당시의 일기장에서 ‘바람과 구름 그리고 비가 되어’ 라는 메모를 다시금 읽어본다.
“소리 없이 다가와 소리 없이 사라지는 무소유의 바람을 좋아했다. 나의 절망과 미련까지 모두 날려 버릴 수 있는 바람이었기에.
헤르만헤세가 좋아했다던 구름을 좋아했다. 유유자적한 자유스러움과 스러져가는 공허(空虛)가 좋았기에.
고즈넉한 우수에 젖어 하염없이 내리는 조용한 빗소리를 좋아했다. 비에 젖어 자기 연민이 아닌 침묵의 우수 속에서 내 자신과의 대화를 좋아했었기에.“
화가 한인현
화가 한인현과 고흐
그 시절 화가 한인현을 좋아했다. 특히 <개봉동 가는 버스에서> 그림을 좋아했다. 당시 나의 일상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이 강한 그림이었기에 말이다.
화가 한인현에게는 두 가지 향이 풍긴다. 청빈의 향과 고흐의 향이다. 한인현은 고흐를 향한 열정과 그리움은 구구절절했지만 그림 한 점 팔 수 없었던 빈한의 생활에 갇혀 살았다. 파리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던 가난한 시절이었다. 다행히 前KBS 이계진 아나운서의 후원으로 고흐의 묘소에 조화 한 송이를 올리는데 뜨거운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고 했다.
고흐 또한 생전에 그림 한 점 팔 수 없는 빈한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동생 테오의 희생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고흐 작품을 우리는 감상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고흐의 작품에는 노란색이 많이 쓰인다. 밀밭이나 해바라기의 인상이 강해선인지 고흐는 황색의 화가라고도 한다. 노란색은 정신분석학적으로 정신분열의 색상에 가깝다고 하는데, 고흐의 삶을 유추하면 어느 정도 연관되어지는 색상이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고흐를 곡선의 화가라 부르고 싶다.
손보저팬 도고 세이지 미술관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해바라기 그림 6점을 그렸다고 했다. 편지 내용으로는 고흐의 공식적인 해바라기 그림은 6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고흐의 7번째 해바라기 그림이 1980년대 크리스티 미술품 경매에서 58억 엔(600억 원)으로 일본기업에 낙찰되었다.
당연히 위작 시비가 일어났다. 물론, 테오에게 보낸 편지 이후 해바라기를 더 그렸을 수도 있다. 여러 해 감정과정을 거쳐 지금은 진품으로 판명이 났다. 위작 시비에 휘말렸던 고흐의 7번째 해바라기 작품은 일본의 신주쿠에 있는 손보저팬 도고 세이지 미술관에 상설전시되어 있다.
고흐의 7번째 해바라기 감상
일본 파견 근무 때 손보저팬 도고 세이지 미술관에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감상했다. 해바라기 작품 옆에는 고갱의 <알리스캉의 산책길>과 세잔의 <사과와 냅킨>도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해바라기는 40호 정도의 크기인데 임파스토 기법으로 두텁게 그려져 입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 앞의 소파에 앉아 진품일까, 위작일까를 나의 기준에 맞춰 감정을 해보았다. 고흐의 붓터치나 평소의 느낌대로 진품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일부 미술 전문가들의 판정은 아직도 진품과 위작을 확실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고흐의 해바라기 감상을 마치고
해바라기 15송이에서 청춘, 중년, 노년의 기운을 느껴졌다. 유독 6송이의 향기가 나를 향하는 것 같았다. 가버린 영포티의 느낌과 어우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피고 지고 다시 피게 되는 윤회적인 영원함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영원함이란, 억겁 속의 머언 먼 마음의 반복이다. 비록 來世에서나 만날 수 있다 하더라도 언젠간 다시 그 시절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기다림의 활력으로 ‘고도를 기다리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