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장에선 왜 졸리는 걸까
클래식장 분위기와 음악의 집중력에 대해 생각한다. 클래식장에서 느껴지는 현장감과 감동은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나에게 클래식은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예술이다. 그런데 클래식장에선 왜 졸리는 걸까? 혹시 나만 졸리는 걸까?
클래식 콘서트장의 활기
퇴근길 러시아워를 헤치고 클래식장 로비에 들어선다. 정장을 한 밝은 표정의 남녀가 여기저기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결혼식장의 정장과는 다른 세미 정장의 분위기다. 사치가 아닌 맵시를 내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남성의 단정한 정장이 반갑기 그지없다. 성의 있는 마음가짐이 느껴져서이다.
로비의 임시카페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커피 향을 음미한다. 클래식장에 가면 음악 못지않게 느끼게 되는 나의 즐거움 중의 하나이기도 하고.
직관사수로 느껴지는 클래식의 현장감
음악회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직관사수’이다. 음향과 무대장치 때문일 것이다. 모르는 음악도 멜로디에 관계없이 여러 악기의 호쾌함에 가슴이 시원스레 열린다. 세상 모든 잡음이 악기가 내는 소리 속으로 사라진다. TV의 음향과 비교할 수 없는 현장감이다. 그래서일까 클래식 연주는 TV 시청으로는 감흥이 일지 않는다. 클래식의 직관사수 이유다.
클래식 무대의 흑백 집중력
클래식장의 분위기는 컬러를 기피하고 흑백의 조화만을 강조한다. 가끔 화려한 의상을 입은 여성 독주자의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지휘자도 연주자도 주로 흑백의 연미복을 입는다. 왜 다른 공연장은 무대장치가 화려한데 클래식장은 흑백일까?
짐작되는 것은 화려한 무대 소품에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연주에 집중하기 위한 지극히 보수적인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상황이기에 아무리 Full HD TV로 중계를 해도 클래식장의 연주 장면은 화면발이 서질 않는다.
마치 눈 오는 날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 前대통령이 검정 양복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눈 쌓인 하얀 설원에서 컬러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리라.
음악에 빠져들면서 겪는 에피소드
음악의 집중력을 위한 흑백 분위기는 좋지만 대신 눈의 지루함이 있다. 음악에 몰입되지 않으면 지루하다 못해 졸리기 십상이다. 언젠가 음악회가 끝나고 공연장 통로를 걸어 나오는 데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젊은 커플의 이야기가 들렸다. 그때의 상황을 메모해 놓은 것이 있다.
‘잘 잤냐?’
‘안 잤어. 눈만 감았어.‘
‘그게 잔 거지 뭐야.‘
‘음악은 눈 감고 감상하는 거야.’
클래식과 졸림 현상
클래식이 대중가요에 비해 쉽게 친근해지지 않는 단면 중의 하나다. 내가 생각하는 클래식은 졸리는 음악이 맞다. 시끄러운 음악이나 소음공해에는 졸리지 않는다. 클래식은 심리적으로 안정된 리듬을 제공하기에 편안한 가수면 상태로 빠지게 된다. 쿠션 좋은 좌석의 전철을 타면 졸리듯이 말이다.
유명한 음악이라도 자기 취향의 멜로디가 아니면 졸릴 수밖에 없다. 특히 무대조명은 어두운 객석에 비해 너무 눈이 부시게 밝다. 자연적으로 눈에 피로가 오기에 눈이 감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오죽했으면 하이든은 놀람교향곡을 만들었고, 한때 열성적 바그네리안이었던 니체 또한 하품 때문에 바그너에게 미움을 받기도 했겠는가.
클래식의 매력과 일상의 괴리
난 바그네리안 같은 클래식 마니아는 아니지만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클래식의 매력”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하품이 나올 때가 있다. 특히 말러 교향곡만 들으면 졸리고 지루했었다. 리힐리스트였던 말러의 선입견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악보가 긴 클래식은 전문 음악인이 아니면 쉽게 기억할 수가 없다.
그러나 졸리고 지루한 음악도 한 번 들으면 두 번 듣고 싶고, 두 번 듣고 나면 세 번 들어져서 가슴에 전율이 오는 순간이 있다. 자연스럽게 클래식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클래식을 너무 고품격으로 여기지 않아도 된다.
클래식의 페르소나
이렇듯 우아하게만 보는 클래식 전문가도 일반인과 같은 페르소나가 있다. 마냥 반듯한 모습만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앞서 이야기한 그 여자 친구는 “잠시 졸렸어”라고 대답했으면 편했고, 남자 친구는 여친이 졸았던 것을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마음의 여유로 즐기는 클래식
클래식을 감상할 때는 시간에 쫓기지 않는 혼자만의 차분한 분위기기 필요하다. 바쁘거나 따분한 일상에서 음악 속으로 잠시 일탈을 하는 것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멜로디가 무의식의 허밍으로 흐르는 순간에 여겨지는 행복. 자기 취향의 행복이다. 오늘 레퍼토리였던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이었던 <솔베이지의 노래>의 잔잔한 여운이 하루 평온을 갖게 한다. 다시 한번 유튜브로 감상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