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한계
수필의 한계는 소설처럼 꾸며 쓰는 게 어렵고 남의 이야기로만 쓰는 데도 한계가 있다. 수필은 삶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진솔한 문학이지만 절대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실전] 수필 쓰기 핵심
수필의 한계
수필과 소설의 차이
다시 수필을 생각해 본다. 수필은 대저 무엇인가? 수필은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담아내는 진솔한 문학’이다. 그런데 수필은 최대의 장애를 안고 있다. 소설처럼 꾸며서 극적인 것을 보여줄 수도 없고, 끝까지 남의 이야기로만 에둘러 쓰는 데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가령, 꾸며 쓰는 소설은 칼을 맞고 죽어 가는 장면이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쾌감을 작가 의도에 따라 마음대로 그려낼 수 있는데 수필은 그럴 수가 없다. 그리고 소재의 선택에서도 어디까지나 쓰는 그 사람의 체험 내의 것이며, 설령 남의 이야기를 빌려 썼다 하여도 그것은 자기 해석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게 한계일까?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지레 타성에 젖어 기왕에 구축된 암묵적 룰 속에 안주해 버린 것이 문제이다. 지금까지 써왔듯이 수필은 그런 식으로 써야 하며, 사고의 틀도 거기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수필의 진솔한 본질
지금까지의 우리 수필은 순치(馴致)된 틀 속에 철저히 갇혀 있었다. 수필 본래의 출발점인 시필의 실험정신이 사라진 채 그냥 대가 몇 사람이 써오는 전철을 밟아가며 새로운 시도에는 손을 놓아버린 셈이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수필을 쓰고 읽으며 수필이 자기의 흥취나 족적을 더듬는 것은 보았으되, 절절한 그 무엇을 전하고 말해주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편지로나 이야기로는 수필 감이 떠도는 데도, 정작 수필로 쓰인 것을 거의 보지 못한 것이다.
수많은 수필 작품 중에서 아직까지 자기를 발가벗겨 수치도 미학으로 승화시킨 감격할(?)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쉬운 대로 조경희 선생의 ‘얼굴’이란 작품에서 여성으로서는 썩 하기 어려운 못난 얼굴 이야기를 대했고, 박연구 선생은 ‘변소고’에서 가난한 소시민의 애환을 보여주었으며, 장백일 선생은 한때 아내가 기원을 운영할 때 아내에게 집적대는 손님의 이야기를 ‘바둑’이란 수필로 쓰고, 정호경 선생이 ‘낭패기’에서 똥 싼 바지 이야기를 진솔하게 써 보여주었지만 탁 죽비로 내려치는 듯한 경이와 감탄을 아직 맛보지 못한 것이다.
소설가의 실험적인 수필
소설가가 쓴 작품에서는 그런 글이 있다. 한편으로는 소설이고, 또 한편으로 보면 수필인데, 작품 ‘날개’를 자전적 수필로 보아줄 수 있다면(이상은 그런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창녀인 아내가 분단장을 하고 손님을 받으러 나가는 아픔을 지켜보는 화자의 심리적 묘사가 리얼하게 그러져 있다. 그리고 다음의 ‘글씨 많이 늘었냐.’라는 소설가 이순의 수필 작품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 일부를 옮기면,
……통틀어 십여 년의 작품 생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게 밤새워 고민한 철학의 문제가 없는 까닭이다. 다만 내게 있는 것은, 때때로 오셔서 명색이 작가 부부인 아들 며느리의 서재를 기웃하며
“일감은 많으냐?”
하고, 고매한 작가 업을 재봉소나 뭐 그런 날품팔이의 일과 같이 취급하는 시어머니와 요새 원고 쓸 게 많아 바쁘다는 며느리에게
“어, 그렇게 많이 쓰면 글씨가 퍽 늘겠구나.”
라고 이번엔 소설 쓰는 일을 대서방 일로 취급하는 학력 전무의 시아버지가 계실 뿐이다.
한글을 모르는 시아버지가 글을 쓰는 작가 며느리에게 인사치레하는 모습을 그린 내용이다. 어디에 이렇듯 인격에 입을 손상을 각오하고 솔직한 글을 쓴 수필가가 있던가. 소설가는 그 치열함을 보이는데 왜 수필가는 못 하는가.
수필의 개성과 감정
이쯤에서 글을 따라 읽은 사람들은 눈치를 챘을 줄로 안다. 내가 결국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를. 그렇다면 결론은 자명한 것이다.
독자에게 자랑하고 싶고, 기억해주기를 바라며 글을 쓰기보다는 좀 부끄럽고 뼈아픈 일이라도 그러한 것을 기피하지 않아야 한다. 꾸미고 내숭을 떠는 일은 글을 죽이는 첩경이며 사약이다. 그리고 글이 바로 그 사람의 다른 표현이라면 개성도 있어야 하고 문장에 감정도 실려 문향도 풍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불석권(手不釋券),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가운데 고뇌하고 사색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 해당 내용은 임병식 저자의 [수필 쓰기 핵심]에서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