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놀의 평온함:휴식


혼놀의 평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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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앞둔 상상

친구들이 하나 둘 조기 은퇴를 하고 있다. 머지않아 나에게도 은퇴의 순간이 올 것이다. 아니, 이미 은퇴 모드에 접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거래처 일감도 줄고 퇴근 시간까지 시곗바늘이 너무 늦게 도는 것을 보니 말이다.

은퇴하면 좋은 점이 무얼까? 수년 전만 해도 자유와 휴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은퇴한 친구의 모습에서, 자유는 권태로 휴식은 무기력으로 감지된다. 때로는 조바심마저 느껴진다. 미래의 불안이 혼재된 100세 시대의 미묘함이다.

인간관계와 나의 성격

한때 개그콘서트 코너에서, “모던하면서 클래식하고, 화려하면서 심플하고, 고급스러우면서 100원짜리인 물건“이라는 개그 대사가 나오면 나 홀로 빙그레 웃곤 했다. 이런 모순적 애매함이 나에게도 있다. 따라서 나는 누구를 만나든 완벽을 바라지 않는다.

장난기 어린 유쾌함을 원한다. 하지만 모임 초대를 받으면 거절을 많이 하는 편이다. 당연히 항의를 받는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를 부러워하면서도 불가근불가원 관계를 좋아하는 성격 탓이다. 궤변일지라도 마음 내키지 않는 만남을 망설이는 것은 나로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다.

휴식에 대한 두려움

나는 혼놀을 즐기는 편이지만 휴식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은 있다. 일요일 늦잠이나 평일의 낮잠에서 깨어나면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융통성 없는 자기 검열에 속박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항시 일상의 어젠다를 지니고 있어야만 마음이 평안해진다. 가장의 책임감인지 막연한 휴식에 대한 두려움인지 모르겠다.

‘나는 더 이상 여행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의 저자인 정은길은 복잡함에는 두려움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 두려움이란, 자유를 택하는 두려움, 혼자라는 두려움, 휴식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일상의 소중함과 혼놀의 휴식

일상이란 모두에게 공평할 수 없다. 일상이 정체되면 어떤 음악도 귀에 들리지 않고 어떤 글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덧없는 삶의 허무가 차라리 위로가 된다. 언뜻언뜻 데카당 문학의 일본 사소설에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나에게 대표적인 소설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인데 잠재된 일탈로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자기 연민 내지는 자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예술을 음미하고 맥주를 즐기는 취향 때문인지 여유롭게 살 것이라는 덕담을 듣는다. 겉은 여유롭게 보일지언정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아직 여유를 누리기보다는 가늘고 길게 일을 하는 게 더 마음 편하다.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휴식을 취한 다는 것은 오히려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 일이다. 함께 일하고 함께 휴식하는 생활에 익숙하기에.

너와 나 사이 한뼘 사이

너와 나 사이 한뼘 사이

언젠가 산책 중에 보았던 연극 포스터의 제목이다. 연애세포가 살아나는 듯한 제목에 한참을 바라보았다. 한 뼘 사이라는 것은 분명 설렘의 사이리라.

혼놀의 평온함:휴식 1

혼놀의 평온함

혼놀 속에서 설렘을 즐기려 노력한다. 연인의 설렘 외에도 여행의 설렘이나 탐구의 설렘이나 예술의 설렘 등 갖가지 설렘주의보는 우리에게 활력을 준다. 나의 미래는 시나브로 소진되지만 한 뼘 같은 설렘의 물결을 상상한다. 이왕 뮤즈의 설렘이라면 더 좋겠다.

이런 문장 끝에는 ㅋㅋ 라고 붙이던데, 꿈도 야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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