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협주곡 20번으로 엿듣는 생명의 고동
인간이 가정법 없이 산다면 무슨 재미로 살까? 먹는 ‘라면’이 아닌, ~했었더라면 같은 ‘라면’은 지금도 나에게 많은 공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계기를 만든다. 가끔 자학에 고개를 떨구기도 하지만 말이다.
가정법이 주는 역사의 방향성
인류 역사에는 가정법이 많다. 특히 정치와 역사에 많은 것 같다.
-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장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조선의 개국은 어찌 되었을까.
- 홍문의 宴에서 두주불사의 번쾌가 술에 취했더라면 항우와 유방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피살되던 날, 부부싸움을 하여 출근 않고 낮술을 마셨다면 로마의 역사는 어찌 되었을까.
- 이사도라 던컨의 머플러가 정~말 짧았더라면 현대무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 기아타이거즈의 투수가 그때 포볼을 주지 않았더라면 그 게임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 부질없는 이야기지만 한 가지만 더 소개해 본다.
모차르트와 어린 공주
모차르트가 6살 때쯤이었다던가? 오스트리아 궁전의 문턱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그때 어린 공주가 모차르트를 일으켜 주었는데, 어린 모차르트가 한눈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선 ‘저와 결혼해 주세요’라는 당돌한 말을 건네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어린 공주는 어린 모차르트를 보며 빙그레 웃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일 그 공주가 성인이 되어 모차르트의 청혼을 받아 주었더라면, 아마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運命’인 것인데 그 공주가 훗날 프랑스 루이16세의 왕비가 되었던 비운의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피아노 소리로 상상하는 콩코드 광장
지난 파리 여행 때, 마리 앙투아네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콩코드 광장에 세 번을 갔었다. 단두대가 설치되었을 장소를 서성이는데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착잡한 마음에 튈르리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0번이 무척이나 듣고 싶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0번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0번(쾨헬466)은 마치 베토벤의 ‘운명’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물론, 마리 앙투아네트보다 먼저 세상을 뜬 모차르트가 마리 앙투아네트를 생각하고 작곡한 곡은 아닐 것이다.
베토벤의 운명은 세 번의 노크로 다가온 다지만, 모차르트의 운명은 밀물처럼 조용히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0번은 머리를 식힐 때 안성맞춤이다. 침잠된 마음을 전환할 때 듣는 음악 중에서는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0번을 자주 듣는 편이다.
이 곡은 생명의 고동소리가 울리는 것 같다. 울림의 고동 속으로 나의 運命을 헤아리게 한다. 무겁지만 아름다운 이 곡은 불 끄고 잠자리에 들면서도 감상해도 좋다.
음악과 함께하는 내일
결코 지루한 음악은 아니다. 만약 지루함이 느껴진다면 젊은 나이지만 의연한 조성진의 그로테스크한 연주 모습을 상상하면 덜 지루할 것이다. 그래도 지루하다면 조용히 눈을 감고 꿈나라로 가는 것도 좋다. 내일을 위한 좋은 휴식이 될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