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라의 절규
다운타운가를 거닐 때면
다운타운가를 거닐 때는 크고 작은 상점들의 인테리어나 상호를 관심 있게 바라본다. 특히 뒷골목을 거닐 때 더더욱 집중을 한다. 대로변의 상점들은 대체적으로 규모가 큰 상점들이기에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뒷골목의 상점들은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상점들이기에 아기자기한 디자인과 독특한 상호가 많기 때문이다.
의상실인 ‘예쁘제’, 미용실인 ‘곱슬이와 찰랑이’, 화장품가게인 ‘앙큼한것’, 치킨집인 ‘속닭속닭’, 호프집인 ‘잔비어스’등 재미있는 이름들이다.
오늘도 대학가의 뒷골목을 지나다 눈에 띄는 상호에 시선이 멈춰 진다. 예쁘고 독특한 상호는 아니지만 카타르시스적인 뉘앙스가 풍겨지는 상호이기에 무슨 가게인지를 살펴본다. “페드라”라는 음악카페이다. 60도 경사지게 뉘여서 휘갈긴듯한 글씨체의 한글과 빨간 영문 필기체로 멋드러지게 씌여져 있다. 대학가의 뒷골목 분위기에 어울리는 가게 이름이다.
영화 페드라(Phaedra)
페드라(Phaedra)는 영화제목으로 많이 알려져있다. 극장에서 정식으로 본 적도 없고 비디오로만 잠깐 본 적이 있다. 페드라는 그리스신화 페드라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인데 현대적 감각으로 각색을 하여 우리나라는 1962년 ‘죽어도 좋아’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던 영화이다.
미국 J.K.케네디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재클린과 결혼을 했던 그리스 해운왕 오나시스를 연상케 하는 스토리였는 데 오나시스의 일대기를 떠올려보면 굳이 영화를 보지않았어도 스토리가 짐작이 가능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그리스 해운업 재벌의 딸 페드라는 해운업계의 실력자 타노스와 결혼한다. 타노스에게는 알렉스라는 전처 소생인 24세의 아들이 있었다. 런던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던 알렉스는 아버지의 결혼소식에 새어머니가 된 페드라를 증오하며 그리스로 귀국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런던 박물관에서 서로를 처음 만난 순간, 페드라는 젊고 순진한 알렉스를 첫눈에 사랑하게 되고 알렉시스 역시 새 어머니인 페드라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껴 둘은 열렬히 사랑하게 된다. 금기를 깬 두사람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파국의 길을 자초하고 마는 데, 스토리적으로는 일반인들의 정서에는 부합하고 결코 아름답지 못한 사랑과 질투의 양면성을 보여준 영화였다.
난 이 영화에서 마지막 부분에서 죽음을 향하여 스포츠카의 요란한 굉음 속으로 질주를 하며 ‘페드라! 페드라!’를 외치며 절규하는 영상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못다 핀 내 청춘의 반성과 아쉬움이 영화를 통해 대리분출 되는 절규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느 복서의 외침
1980년대 세계챔피언에 올랐던 일본의 인기프로복서가 있었다. 복서로서의 파이팅 외에도 남성다운 외모를 겸비해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경기 중 머리에 받은 충격 후유증으로 뇌수술까지 받고 결국 은퇴를 하였는데, 후에 예능프로에 가끔 나와 지난 인기를 되살리고 있었다.
어느 날 일본의 유명 세제업체인 화왕(花王)의 CF에 그가 등장했기에 유심히 보았는 데, CF 마지막에 라이언킹(獅王)을 의미한 듯한 “라오~라오~”를 하늘을 향해 외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기량과 인기의 절정에서 타의적으로 은퇴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스토리를 알고 있기에, 나에게는 그 외침이 단순 CF의 외침이 아닌 복서로서 기량을 다하지 못한 통한의 절규로 들리기에 충분했다.
내면의 반항과 자학
이 두 외침의 내면에는 반항과 자학이 공존하는 듯 하다. 누구든 그러하듯이 나 또한 사춘기를 지나오며 자의적 타의적으로 느끼는 반항적인 행동을 보이며 자라왔다. 이제는 내 주위의 반항을 받으며 살아가는 위치가 되었다. 아들, 딸의 사춘기적인 반항, 아내의 사회적 반항 그리고 직원들의 불만적인 반항을 직간접적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거기에 내 스스로의 반항까지도 느껴진다. 아이들이나 아내나 직원들의 반항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만 내 자신의 자학성 반항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때로는 참을 수 없는 울화나 답답함에 내 이성이 흐려지고 인내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스스로에게 위로를 하거나 울분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를 위한 샤우팅
어느 정치인은 울분이 생길 때에는 샤워기에 물을 세게 틀어 놓은 상태에서 악을 써 본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혼자 운전을 하면서 악에 가까운 소리로 “페드라~페드라~” 또는 “라오~라오~” 를 외친다. 이렇게 몇 번 외치고 나면 어느정도 가슴속의 응어리가 풀어지고 마음이 안정되어 감을 느낀다.
일종의 자기최면인 셈인데 요즘들어 이런 샤우팅이 늘어나는 느낌이다. 아직도 내 욕심의 가지치기를 못하고 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학성 샤우팅인가 보다.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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