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후아타네호
거울 속의 어둠
요즘 거울을 들여다보는 횟수가 많아졌다. 거울뿐만이 아니라 내 모습이 투영되는 유리벽이나 엘리베이터에서도 내 얼굴을 자주 들여다본다. 시간의 흐름보다 빠르게 늘어나는 것 같은 흰머리는 얼굴을 잠식하다 못 해 내 영혼의 실루엣마저도 어둡게 한다.
윤동주의 자화상이란 詩처럼, 애증의 세월은 이내 자조적인 한숨으로 흘러나오기도 한다. 이럴 땐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하루가 의기소침하게 흐른다. 이 그늘진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자기최면을 걸고자 나만의 주술적인 주문을 소리 내 외친다.
“지후아타네호…...”라고.
세월의 순박한 시작
참 세월이 빠르다. 동안(童顔)이라는 부러움 아닌 부러움을 들으며 나이 먹는 줄 모르고 살아왔는데 어느새 지천명을 훌쩍 넘겼다. 내 인생을 80세로 설계했을 때 3분의 2를 지나왔다. 불현듯 내 삶을 반추하고 싶다는 생각에 두 눈 감고 회상에 잠겨본다.
10대에는 섬 소년의 순박한 동심과 결코 넉넉한 가정형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모님의 사랑 속에 부족함 없이 학업과 사춘기를 무난히 지날 수 있었다.
20대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해에 부친을 여의었다. 갑자기 기울어진 가세에 가난이라는 궁핍함 속에서 절망과 고독을 생활 속에 끼며 살았었다.
30대에는 가난과 그늘진 마음을 전환하기 위해 일본으로 직장을 옮겼고, 5년여의 이국 생활에서 어느 정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귀국하여서는 결혼과 동시에 만학도 이루었다. 두 아이가 태어남으로써 내 삶의 환희는 극치를 이루었다
40대에는 IMF를 거치며 사회적 고난과 불안 속에서 가장의 책임과 경제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힘들어진 회사를 퇴사하고 창업을 하였다. 창업 초기의 어려움은 모두의 공통이었기에 이런저런 고통과 시행착오를 감수하며 자수성가의 노력에 매진하였다.
50대에 접어든 요즘은 아직도 안정된 기반을 이루지 못해서인지 한때는 통속적인 대중가요라고 여겼던 이종용의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든가 이남이의 “울고 싶어라”라는 노래를 은연중에 독백처럼 부르고 있다.
돈과 행복
인간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갈등과 아픔이 생긴다지만, 인정한다 한들 이기와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의 행위에는 고난과 슬픔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하루를 정리하고자 두 눈을 감으면 머릿속은 온통 나 자신을 향한 증오가 가시질 않는다.
자학과 자괴감으로 가득 차 있음을 느낀다. 아직도 어설픈 경제관념과 경제력에 나 스스로가 질곡당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 처한 내 경제력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행복의 1순위가 돈이 될 수 없지만, 불행의 1순위는 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좀 더 효율적인 경제활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가족과의 여가를 무시할 수 없기에 언제나 의식적으로 여유를 가지려고 오늘도 거울을 보며 자기최면적인 주문을 외치는 것이다.
쇼생크탈출
1994년에 완성된 쇼생크탈출을 최근에서야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억울하게 종신형을 선고받은 은행원 앤디가 쇼생크감옥에서 탈옥에 성공하는 이야기이다. 앤디는 쇼생크감옥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또 다른 죄수 레드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어느 정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고 레드에게서 건네진 조그마한 망치로 벽을 뚫어 탈출구를 만들게 된다.
탈옥하기 전날 교도소 벽에 우울히 기대앉아 있는 앤디에게 레드가 다가선다. 앤디는 레드에게 가석방을 이야기 꺼내지만 레드는 손사래를 친다. 종신형을 받고 복역하는 죄수들의 길들여진 생활이 바깥생활에 적응을 못 하는 두려움으로 가석방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앤디는 알게된다.
그러나 앤디는 오랜 복역생활로 길들여진 자기 생각에 갇혀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레드에게 희망과 자유를 이야기한다.
지후아타네호의 의미
멕시코인들은 태평양을 “기억이 없는 따뜻한 곳”이라고 한다. 앤디는 “기억이 없고 따뜻한 태평양에 인접한 멕시코의 조그마한 섬 지후아타네호에서 살기를 꿈꾼다”라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레드는 희망은 현실에 지배를 받는다면서 앤디의 희망을 무시한다.
레드가 건넨 조그마한 망치로 탈출구를 뚫으려면 600년이 걸린다던 것을 앤디는 20년 만에 탈출구를 만들어 탈옥에 성공한다. 여기에 희망을 가진 레드도 훗날 가석방이 되고 앤디와의 조우를 위해 멕시코의 국경을 넘는다. 그러면서 레드도 외친다.
“태평양이 내 꿈에서처럼 푸르기를, 나는 희망한다.”
이 영화의 감동은 참으로 컸다. 레드역의 모건프리먼의 소탈하고 정감 어린 미소도 인상적이었지만, 앤디가 탈옥하기 전에 레드와 나눴던 이 대사가 잊히질 않고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소리내어 희망을 외치다
길들여 진다는 것과 희망한다는 것. 바보처럼 살아온 지난 기억을 잊고 싶지만,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화되어 추억과 경험이 될 것이다. 길들여진다 건 나에게 있어서는 매너리즘 같은 것이다. 언젠가부터 길들여진 나의 그늘진 생활에서 자기최면 적으로나마 자유로워지고 싶다.
나에게 있어 지후아타네호란, 길들여짐에서 벗어나 변화와 다양성에 순종하고 기억이 없이 따뜻한 곳이 아닌 추억이 잔잔하게 피어오르는 따뜻한 곳을 의미한다. 투영된 내 모습이 침묵에 젖어 있을 때, 앤디와 레드가 희망했던 것처럼 수시로 소리내어 외쳐본다.
“나도 희망한다. 지후아타네호!”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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