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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파리 여행(제2화)
파리의 아침
파리의 첫날은 세느강의 야경에 이은 보르도 와인의 취기에 잠이 들었다. 빈티지 와인은 소믈리에가 알아주겠지만, 일반 와인은 내가 알아주겠다며 보르도2012(bordeaux) 레드와인을 제법 마셨는데 아침 일찍 눈이 뜨였다. 몸도 가뿐하다.
와인은 숙취가 없는 건가, 아니면 벌써 시차적응이 된 건가? 밥 대신 빵을 먹어야 하는 호텔 조식의 생소함이 유럽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크루아상을 먹으며 모닝커피를 여유롭게 마시는데 진부하게도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이번 파리여행은 나 홀로 자유 여행이지만 오늘은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파리 시내 무료 투어가 있는 날이다. 에투알 개선문이 눈앞에 보이는 샹젤리 제 지하철역으로 간다. 약속시간이 한참 남았기에 샹젤리제 거리를 산책 삼아 거닐어 본다. 이른 아침 명품샵은 아직 오픈 전이다.
11월 중순의 쌀쌀한 아침 공기를 헤치고 운동복 차림의 부부가 조깅을 한다. 서울의 명동이나 일본의 오모테산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도로 표면이 아스팔트가 아닌 돌조각으로 촘촘히 박힌 도로다. 클래식한 느낌이 좋기는 하지만 당시의 도로 공법으로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꼬.
1일 투어팀이 모였다. 신혼부부 네 쌍과 숙녀 한 분이다. 나를 포함해서 열 명이다. 가이드의 내레이션을 무선이어폰을 통해 들으며 개선문을 향해 걷는다. 앞서 걷는 다정한 신혼부부처럼 숙녀와 나는 자연스럽게 함께 걷는 분위기가 되었다. 숙녀는 회사에서 일주일 휴가를 받아 혼자 첫 유럽여행을 왔다고 한다.
개선문의 아름다움에 가려진 권력의 역사
개선문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밝게 빛나고 있다. 내가 상상했던 규모보다 훨씬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개선문을 가운데 두고 한 바퀴 돌아가며 건축물의 면면을 감상한다.
개선문과 주변의 드골 광장에는 삼촌 보나파르트 나폴레옹과 조카 나폴레옹 3세의 야욕이 서려 있다. 정치인이었던 그들의 모습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필름처럼 투영된다. 파리의 도시계획과 오스만 남작의 야심과 함께.
권력의 과시욕에 가까웠던 배경과 결과도 시간이 흐르면 이렇게 또 과는 잊히고 공만 남는다는 게 과연 바람직한 역사인가를 생각해 본다. 토지 보상금이나 이주 지원금도 거의 없이 밀려난 그들에게 권력자들은 ‘창조적 파괴’라는 레토릭을 구사했을 것이다. 아마도.
개선문 지하에서 히틀러를 비롯한 역사 사진과 전시물을 느긋하게 살폈다. 지하에서만 자유 시간 1시간을 모두 소비했다. 따라서 개선문 전망대까지는 올라갈 시간이 없다. 다시 지상으로 나와 개선문 광장을 향하는데 큰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한다.
유럽의 비루한 현실
일행과 함께 걸었던 숙녀의 핸드백에 여성 집시의 손이 들어가는 것을 본 것이다. 외마디 기함에 숙녀와 집시가 동시에 나를 바라본다. 숙녀는 아직도 자신의 핸드백이 열렸던 것을 모르고, 집시는 뻗었던 손을 거두고 나를 뻔히 바라볼 뿐 태연하게 돌아선다.
다행히 숙녀의 핸드백에서 잃어버린 물건은 없다. 집시의 소매치기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나니 유럽 사회문제의 하나인 그들의 비루한 생활이 참담하게 여겨진다. 선진 유럽이라는 치안이 왜 이렇게 방치되고 있는 걸까. 해결 안 하는 것일까 못 하는 것일까.
문득, 조선의 어느 임금과 신하의 대화가 생각난다. 남산에 오른 임금이 저잣거리를 내려다보며 심히 걱정스럽게 신하에게 묻는다.
‘저 많은 백성들은 하루하루를 어찌 먹고살아 가는가.’
‘걱정 마십시오. 원래 사람이 수 천 모이면 서로 치고 받고 속고 속이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역사의 만남 콩코르드 광장
투어 일행은 콩코르드 광장을 향한다. 홀로 여행 왔다던 숙녀는 언제 만났는지 낯선 숙녀와 무언가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다. 알고 보니 지각한 낯선 숙녀 또한 오늘 투어 일행인데 그녀 또한 홀로 여행이라고 한다. 외국이라서 그런가? 두 숙녀는 금세 친구가 되어있다.
혼자 걷는 나에게 가이드가 다가온다. 선배 따라 파리에 왔다가 우연히 가이드가 되었다고 한다. 파리에 오지 않았다면 동네 PC방에서 게임이나 하며 백수생활을 하고 있었을 거라며 자신의 명함을 나에게 건넨다.
콩코르드 광장에 도착했다. 프랑스혁명 때,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단두대가 있던 곳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생각하면 그녀의 비극보다도 결혼해 달라고 프러포즈를 했다던 어린 모차르트가 떠오른다. 모차르트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모차르트 살아생전 앙투아네트의 처형 소식을 들었다면 그는 어떤 심정이 되었을까. 그리고 어떤 음악을 만들게 되었을까. 역사의 가정은 다 부질없다고 한다. 꼭 역사만 그럴까? ‘내가 안 해서 그렇지 마음만 먹는다면 못 할 게 없다’는 중2병 어른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말이다.
오늘 여행에서는 개선문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감상하면서 역사적 배경과 권력을 생각합니다. 또한, 집시의 비루한 현실을 목격하고 이로 인해 유럽의 사회문제에 대한 생각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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