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생트를 마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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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생트를 마시는 사람들

밤 10시 그리고 자정

밤 10시 그리고 자정. 반복되는 시각. 문득, 오늘 밤은 왠지 커피보다 맥주가 나을 것 같아 커피포트를 끄고 캔맥주를 꺼내 든다. 책장 앞에 서서 캔맥주를 훌쩍인 채 술에 관한 책을 훑다가 오래전에 읽은 책이 눈에 띈다. 지금은 절판된 강홍규의 <문학동네 술동네>와 남태우의 <주당들의 풍류세계>다.

강홍규의 글이 저널리즘적이라면 남태우의 글은 아카데믹적이다. 주당의 시선으로는 둘 다 술의 미학에 젖을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두 글의 내용을 기억해 본다.

술과 문학의 상관 관계

헤밍웨이는 밤 10시부터 새벽까지 글을 쓰고 오전 내내 술을 마셨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시베리아 빙하의 설원에서는 보드카를 마시고 손을 호호 불어가며 작품을 썼고, 관철동 문학인들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카바이트 막술에 두통의 고통을 참으며 밤새 문학을 논했다고 했다.

압생트와 예술가

한 마디로, “술이 문학을 부르는가, 문학이 술을 부르는가” 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술은 비단 문학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다는 술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뮤즈와도 같은 존재다. 한때 ‘예술가의 술’ 이라는 압생트가 있었다. 특히 고흐가 사랑한 술이라고 많이 알려져 왔다. 

압생트(Absinthe)는 불어로 고뇌 또는 쓴쑥이라고 하는데, 쑥의 원료에서 환각작용이 밝혀져 한때 판매가 금지되었다. 이후 마약성분을 빼고 다시 생산이 재개되었고 우리나라에 수입되기도 했다. 압생트는 알코올 도수가 50~80도 정도로 독한 술이기에 물과 희석을 시켜 마셔야 한다. 가난한 예술가들이나 민중들은 위스키 같은 비싼 술 대신에 압생트를 많이 마셨을 것만 같다.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술 마시는 순간이 반드시 즐거운 것은 아니다. 즐거워야 할 술집에서의 고독을 여러 그림에서도 종종 느낄 수가 있다. 마네는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분위기를 쓸쓸한 공허감으로 그렸다. 공허감도 때론 술맛을 느끼게 하는 동무가 될 수 있기에 마네의 그림은 불편하지 않게 담담하게 감상한다. 

드가의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그러나 드가의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을 보면 불편함이 느껴지고 생각이 깊어진다. 압생트 한 잔을 앞에 두고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커플에게 안타까움이 인다. 즐거워야 할 연인과의 술좌석이 피곤함에 젖어 있어서다. 남자의 무책임인가 여자의 나이브함인가, 라는 그림 속의 분위기를 상상할 때면 때론 짜증이 일 때도 있다.

폴리베르제르

맥주와 음악

맥주 마니아인 나로서는 맥주 외에 다른 술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압생트라는 이미지에 빠져들 때면 시인 랭보의 한 마디에 취해서 한 번쯤 마셔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위스키보다는 압생트가 더 어울릴 것 만 같은 랭보는 ‘푸른빛 압생트가 선사하는 취기야말로 가장 우아하고 하늘하늘한 옷’이라고도 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매일 밤 10시가 찾아든다. 오늘처럼 자정이 한참 지난 주말의 심야에는 가끔씩 압생트 생각이 간절하다. 이럴 때 듣는 음악이 있다. 최성수의 <위스키 언더락>이다. 특히 노랫말이 마음에 와닿는데 어쩌면 멜로디보다 가사에서 술발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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