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간송 전형필


몇 해 전, 간송미술관이 재정난을 겪으며 국가보물 2점을 경매에 내놓았다는 뉴스가 있었다. 간송 전형필이 보화각을 세운 지 82년 만의 일이었는데 안타까움 보다 쓸쓸함이 짙게 깔리는 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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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간송미술관의 존재

처음 미술관 이름을 들었을 때 송나라 때 만들어진 중국 박물관일 줄 알았다. 1999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첫 권을 읽고서야 서울에 있는 개인 박물관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적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다음 날 월차를 내고 당장 가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일본에서 직장을 다닐 때였기에 발만 동동 구르는 심정이었다.

인터넷 사용 또한 원활치 않은 시기라서 간송미술관의 존재는 상상 속에서 궁금증만 더해 갔다. 훗날 귀국하여 간송미술관 답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일 년에 두 번만 개관하는 관계로 일정 조율이 필요했고, 나의 생활지가 광주인 관계로 일정이 맞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기를 반복했다.

진경시대 화원전

어느 해 가을, 슬로우 트래블을 기획하였다. 동해바다와 통영의 바다를 여행하며 나 홀로 유유자적할 때였다. 우연히 본 신문에서 간송미술관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이번 “진경시대 화원전”은 간송미술관에서는 마지막 전시라는 내용이었다.

전시 기간을 보니 오늘이 마지막 날이 아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통영의 남은 일정인 백석 시비와 샘골 답사를 포기했다. 부랴부랴 짐을 꾸리고 서둘러 5시간 30분 총 431Km를 운전하여 간송미술관에 당도했다.

간송미술관의 역사와 소장품

간송미술관은 1938년 일제 식민지 치하 때 보화각으로 완공된 개인 박물관이다. 1971년 가을, 진경산수화 “겸재 정선”을 시작으로 2013년 “진경시대 화원전”을 마지막으로 40여 년간의 간송 박물관에서의 전람회를 끝냈다. 이후 전시는 동대문 DDP에서 간송문화전을 열고 있다.

간송미술관에 소장 중인 문화재 중에서 두 가지를 좋아한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간송이 직접 그린 ‘고당추효’라는 그림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대왕의 지문이 남았을 것 같은 느낌에서이고, 고당추효는 ‘오래된 연못의 가을 새벽’ 이라고 해석하는 간송의 정서를 대변한 그림 같아 좋아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훗날 동대문 DDP에서 감상했지만 영인본이어서 실망했다. 언젠간 원본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문화재 픽션과 역사소설

– 오늘 무슨 작품이 가장 보고 싶어요?
“신윤복 그림이요.”
– 그래? 근데 신윤복이 남자일까 여자일까?
“여자요.”
– 왜 여자로 생각했을까?
“TV에서 보았어요.”

당시 이 소녀도 TV에서 <바람의 화원> 드라마를 보았던 모양이다. 역사소설에 픽션이 가미되는 것을 탓할 수 없다. 그러나 신윤복의 관련 자료가 적다고 여자로 픽션화 시킨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초선을 중국의 4대 미인에 포함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드라마 작가인 신봉승은 다음과 같이 말을 한 적이 있다. ‘역사 소설의 픽션에도 당대의 시대정신이 드러나야 한다‘라고.

아, 간송 전형필 1

마치며

서울 출장길에 해마다 들르던 동대문 DDP의 간송미술전을 최근 관람하지 못했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올해 간송문화전이 열릴지 모르겠다. 재정난으로 두 보물을 경매해야만 했던 사실이 왠지 허탈하다. 우리 문화재에서 한국의 미를 지키고자 했던 간송 전형필의 마음을 상상할 수 있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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