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생무상
시골집의 반려묘
세상의 소음이 사라진 시골집은 평온하고 고요하다. 백색 소음조차 스며들지 않는 적막 속에서 가끔씩 고독함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때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오는 존재가 있다. 바로 ‘쿵동이’라고 부르는 길고양이다. 나의 시골집을 자신의 터로 살아가는 쿵동이는 나에게 소중한 반려묘나 다름없다.
지난달, 시골집에 왔을 때 쿵동이는 네 마리의 아기 고양이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텅 빈 집, 척박한 환경 속에서 홀로 새끼를 키우는 쿵동이의 모습은 무척 애처로웠다. 일주일간 머무는 동안, 쿵동이와 아기 고양이들을 위해 사료는 물론, 소시지, 치킨, 돼지고기까지 정성껏 챙겨 먹였다.
시골집을 떠나오면서 쿵동이와 아기 고양이들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야생성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광주로 돌아왔다.
아기 고양이와 재회
보름 만에 다시 찾은 시골집. 쿵동이는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마당으로 달려 나왔다. 아직 아기 고양이들은 경계심을 풀지 못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우선 쿵동이에게는 사료와 간식을 선물하며 반가움을 표했다.
일주일 분량의 찬거리를 냉장고에 채우고, 방 청소를 마쳤다. 마당이 내다보이는 마루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쿵동이 옆에 아기 고양이 두 마리가 사료를 먹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나머지 두 마리도 곧 나타날 거라 기대하며 중간중간 아기 고양이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녁까지도 두 마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벌써 분가하여 다른 곳으로 떠났을까?
텃밭을 정리 하다가
비대면 업무를 처리하고, 책을 읽고, 커피와 맥주를 마시며 이틀을 보냈다. 오늘은 시골집과 지척에 사는 누나가 텃밭을 정리하러 왔다. 나 또한 마당의 작은 나무 가지치기를 하며 수돗가를 자주 드나들었다. 그런데 수돗가를 지날 때마다 이상한 냄새가 나는 듯했다. 평소 냄새에 민감한 나로서는 냄새의 근원을 찾으려 애썼지만, 딱히 눈에 띄는 쓰레기는 없었다.
오후에는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창고에 우산을 가지러 가는 길, 수돗가 하수구 쪽에서 파리들이 떼 지어 날아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끔찍하게도 하수구엔 아기 고양이 사체가 있었다. 무늬를 보니 네 마리 아기 고양이 중 하나였다.
무지개다리 건넌 아기 고양이
측은한 마음에 아기 고양이를 땅에 묻어주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악취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KF94 마스크를 착용하고 검정 비닐로 아기 고양이를 감쌌다. 텃밭 외진 곳에 땅을 파고 아기 고양이를 묻었다. “다음 생에는 좋은 세상에서 태어나렴”이라는 속삭임과 함께 흙을 덮었다.
뒤돌아 나오며 마당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가 내리는 탓인지 쿵동이와 아기 고양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아기 고양이의 주검을 보았을 것이다. 그 순간 그들 또한 묘생의 무상함을 느끼며 슬퍼했을지도 모른다.
슈바이처 박사는 인생의 비참함을 잊게 해주는 것은 음악과 고양이라고 했다. 오늘 무지개다리를 건넌 아기 고양이를 생각하면 묘생의 비참함도 느끼게 되는 밤이다. 그리고…보이지 않는 나머지 한 마리 아기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