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쓰기와 자기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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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쓰기와 자기 성찰

[실전] 수필 쓰기 핵심

수필은 인격과 인품이 함께 하는 문학이다. 그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인품을 더 앞세워야 한다. 혹자는 글을 쓰는데 글이 먼저지 무슨 인품 타령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필은 그렇지 않다. 장르적 특성상 자기 자신이 1인칭 주체가 되어 자기가 체험한 것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인격이 중요하고 인품이 요구되는 이유다.

수필과 사람의 덕목

수필을 쓰는 사람이 지녀야 할 덕목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수필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고운 심성과 바른 기개를 가져야 한다. 보통 사람보다는 역사의식이나 도덕성이 앞서야 한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독자를 선도하여 의식을 깨우치고 무언가를 느끼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로 중요하다. 남의 모범이 된다는 것은 바른 자세와 가치관을 지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자질은 어느 한 시기, 잠깐의 노력과 주의력으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꾸준한 자기관리와 인격 수양, 그리고 깨어있는 의식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수필가의 진실성

얼마 전, 신문에 우리가 즐겨 부르는 선구자의 노래가 왜곡된 부분이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 노래는 독립투사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만주 벌판을 누비면서 부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 친일 부역자들이 만들고 불렀다는 것이다.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이렇듯 진실은 묻히는 법이 없다. 반드시 나중에라도 꼭 밝혀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수필을 쓰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라도 처신을 바로 해야 한다. 이점은 명심보감 도 가르치고 있다. “과전(瓜田)에 불납리(不涉履)하고 이화(李花)에 부정관(不正冠)하라.” 즉, “오이밭에서는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말며,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 한 것이다. 수필을 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금과옥조로 여겨야 할 말이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에서 살았던 문인 중에서 친일했거나 친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모호한 삶을 산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 이들은 뛰어난 필력으로 문학적 업적을 남긴 바가 적지 않지만, 한때의 그 잘못으로 빛을 잃고 있는 게 사실이다.

수필가 피천득의 인연

오래 전, 수필계의 원로인 피천득 선생님의 근황이 신문에 실린 적이 있었다. 거기서 그는 “나는 일제를 위해 부역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긴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인연’이라는 작품을 떠올리면 왜 하필 그때 ‘그 일본 여인과의 인연인가.’ 하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 작품이 탄생한 배경과 함께 눈살이 찌푸려지는 정황 때문이다. 그 이야기가 전개된 시대를 보면 1920년대 후반이 분명하고, 이때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합방시키고 나서 불같이 일어나던 독립운동을 억압하기 위하여 애국지사들을 무차별 잡아 가두고 고문하던 때였다.

그런데 그때 하필이면 일본인의 집을 들락거리며 “이다음에 크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라는 말을 들어가면서 일본 소녀와의 한가로운 산보나 즐기는 행위가 ‘과연 그래도 되는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하였다. 작품 내용에도 “나는 얼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고 하지 않았던가.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없지 않은 것이다.

수필가의 정의감

수필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명심보감이 가르치는 것처럼 모름지기 자기 처신과 관리, 성찰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투철한 역사의식도 지닐 필요가 있으며 남다른 정의감을 가지고 사회 현상도 주목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까닭은, 너무나 분명하게도 수필가는 자신이 남에게 본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좋은 글을 써낼 수가 없고, 독자 또한 의식이 흐리멍덩한 사람의 글을 좋게 보아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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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쓰는 일상어

* 해당 내용은 임병식 저자의 [수필 쓰기 핵심]에서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