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의 소망과 영자의 꿈
대구에 있는 거래처 중에 이안감독의 영화 ‘색,계’에 나온 남자주인공 양조위를 닮은 사장이 있다.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머리 스타일에 깔끔한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양조위다. 그 사장을 볼 때마다 속으로 나는 멋쟁이 양조위 사장이라고 불렀다.
양조위 사장과 직원의 소망
어느 날 전체 직원들과 회의를 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마침 그날 회의 시간에는 양조위 사장이 직원들에게 갖고 싶거나 장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씩을 발표하라는 숙제를 내어 주었던 모양이었다. 직원들에 앞서서 양조위 사장부터 자신의 소망을 이야기 했다. 자신은 소망하는 것을 수첩에 적어놓고 그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나름 노력을 했다고 한다.
학창시절 때는 파카 만년필이 당시 희망목록의 1번을 차지했는 데 그 소망을 이루었던 기쁨을 이야기 했고, 지금은 고급 오토바이인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을 타고 랠리에 참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음으로는 직원들이 하나씩 자신의 소망을 발표하였는 데, 발표하는 직원들의 얼굴에 금세 소망이 이루어진 듯한 행복감이 넘쳐 흘렀다.
양조위 사장은 나에게도 한 가지 소망을 이야기 하라고 했다. 당시 난 골프를 배우고 있었기에 세미프로 골퍼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엉겹결에 대답했다. 하지만 세미프로는 커녕 여지껏 보기플레이어도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나 또한 소망에 그쳤지만 그 순간 만큼은 직원들 못지 않은 행복감으로 광주로 돌아오는 내내 하루가 즐거웠던 기억이다.
바보들의 행진의 ‘영자의 꿈’
소망이라든가 꿈이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초등학교 시절에 교실의 시간표가 붙여있는 여백에는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잠언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중학시절에는 “Boys, be ambitious!”라는 원문까지도 함께 적혀 있었지만 나에게는 단지 표어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중3이 되어서야 진정으로 내 꿈을 생각해 보게 되었는 데, 의외로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영화를 보고 난 후이다.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영화는 70년대 초 통키타와 생맥주를 대변하는 대학생들의 캠퍼스 이야기였다. 두 주인공의 대사에 “꿈”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남자 주인공인 병태가 여주인공인 영자에게 “영자의 꿈”을 묻는다. 영자는 “평범하게 결혼해서 잘 사는 거”라고 대답 한다. 이에 병태는 잔디밭을 뒹굴며 자조적으로 배꼽을 잡고 웃는다. 그 모습을 본 영자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병태를 바라보는 데, 나 또한 그 장면에서 영자의 꿈은 당연히 여자로써 현모양처가 되는 게 꿈이라고 생각했다.
왜 병태가 자조적인 웃음을 보냈는지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클리셰에 가까운 진부한 대답이 병태는 아쉬웠는 지도 모른다.
영화가 끝나고 나의 꿈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던 것 같은 데, 중3 당시 무슨 꿈을 가졌는지 지금은 기억에 없다. 아마도 고교평준화가 된 연합고사를 잘 치루는 것이 그 때의 꿈이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꿈을 향한 순간
고등학생이 되고 사춘기 무렵에야 내 꿈을 구체적으로 가지기 시작했다. 그림 그리는 것이 좋긴 했지만 부모님은 기술자가 되기를 바랐다. 처음엔 방송국 엔지니어가 되는 꿈을 가졌지만 기술시간에 컴퓨터 기술자가 월급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자과(電子科)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당시에는 전산과가 많지 않았기에 전자과(電子科)나 전산과(電算科)가 같은 과(科)인줄 알았다. 당초 전자과에서 나중엔 전산과로 편입하여 결국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기술자라는 직업은 어디까지나 부모님의 바람과 돈을 잘 벌수 있을 같아 선택한 꿈이었다.
IT프로그래머는 내 적성에 맞는 직업이고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순진했던 고등학생 때의 꿈처럼 많은 돈은 벌어 부모의 바람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프로그래머가 내 꿈의 종착역은 아닌 듯 하다. 내 꿈의 종착역은 문학인이 되는 것이고 늦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그 길을 걷고 있다.
꿈을 갖는 설렘
그렇다면 아내의 꿈은 뭘까. 언젠가 운전하다말고 아내에게 꿈을 물어본 적이 있다. 순간적으로 나오는 아내의 대답은 다큐멘터리 내레이터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난 아내의 꿈은 간호사를 은퇴하고 안정된 노후와 자식의 안녕을 바라는 평범하고 공식화된 답변일 줄 알았다.
바보들의 행진의 ‘영자의 꿈’처럼 말이다. 아내의 꿈인 내레이터가 되는 방법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에 더 이상 추가 질문을 하지 못했다. 이후 구체적으로 아내의 꿈을 물어본 적이 없다. 물어본들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기 자칫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느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언젠가 아내의 꿈을 이루는 데 일조할 것이다.
꿈을 갖는 다는 것은 행복한 소망이다. 어려서 갖는 꿈과 성인이 되어 갖는 꿈의 종류는 다르겠지만 꿈을 갖는다는 설렘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설렘의 자체는 존재의 이유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내년에 99세 백수(白壽)가 되는 어머니가 떠오른다. 그렇다. 지금 어머니의 꿈은 무엇일까.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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