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 소리꾼의 삶 그 한의 나그넷길
이제껏 이토록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는 없었다.
Sopyonje, 감독 임권택, 출연 오정해, 김명곤, 김규철, 1993.
서편제 나그넷길을 걷는 중년 소리꾼
중절모를 쓴 중년의 사내가 가방을 지고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들길을 간다. 뒤에는 치마저고리 차림의 앳된 처녀가 가방 하나를 들고 따른다. 또 그 뒤에는 둥그런 북을 짊어진 청년이 걸어오고….
임권택 감독의 소리와 풍경의 조화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1993)를 보고 나서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 것은 이 소리꾼 일가가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넷길 장면이다. 때로는 보리풀이 파릇한 봄 들길을 걷고, 때로는 바람 찬 억새밭 사이를 헤치며, 때로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 아래서 낙엽을 밟는가 하면, 어느덧 눈발 날리는 산길을 허위허위 넘는다.
카메라는 될 수 있는 대로 고정된 자리에서 먼 거리로 이들 장면을 잡는다. 유장한 판소리의 가락과 구슬픈 배경음악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영화는 남도의 빼어난 산수를 화폭에 수놓으면서 모처럼 우리 땅의 흙내음을 물씬 풍겨 준다.
인생을 누가 나그네라 했던가. 구름처럼 떠도는 나그넷길. 임권택 감독은 사람의 한평생을 길을 걷는 것으로 표현했다. 이것은 비단 <서편제>만의 모습이 아니다. 임 감독의 영화를 주의 깊게 본 사람은 그의 작품들이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나그넷길 모티프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만다라>(1981)에서 보았던 두 승려의 운수 행각,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에 그려진 구도의 방랑길, 또는 <개벽>(1991)에 나타난 끝없는 도피의 발걸음 등은 이 「서편제」의 나그넷길과 그 맥락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
서편제 원작 이청준의 소설 <남도 사람>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는 본디 ‘남도 사람’이란 제목을 가진 연작의 첫 번째 작품이다. 그것은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를 거쳐 <다시 태어나는 말> 등 다섯 편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주된 내용은 소리꾼 일가의 만남과 헤어짐을 중심으로 그들의 소리에 얽힌 발자취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일화 또는 후일담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첫 번째 소설은 완성도가 높은 편이지만, 나머지 것들은 앞의 작품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고 있어 연작의 한계가 엿보인다. 소리꾼의 삶의 궤적을 끈질기게 담아내고자 한 의도는 훌륭하지만 같은 이야기가 장황하게 되풀이된다.
주인공의 내면에까지 이르지 못하는 이청준 특유의 객관적 시점에 얽매인 서술방식은 솔직히 독자를 하품 나게 만든다. 그리고 “한으로 해서 소리가 열리고 한으로 해서 소리가 깊어진다.”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등장인물들이 어떤 한을 어떻게 품고 있는지 수긍할 만한 근거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문학작품 영화화의 한계
대개 문학작품의 영화화는 원작을 읽은 사람을 실망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장편소설을 영화화한 것은 지나친 축약으로 뼈대만 엉성히 남아 진한 맛이 없고, 단편소설로 만든 영화는 지나친 군더더기로 원작을 왜곡시키기 쉽다. 그러나 <서편제>는 이 점에서 매우 다행스러운 편에 속한다.
배우 김명곤이 각색한 이 영화는 여러 도막으로 갈라졌던 원작의 이야기들이 긴밀한 맥락으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또 원작에 없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보조 인물들이 첨가됨으로써 극적 긴장을 돕고, 단조로움을 벗고 있다.
그러니까 <서편제>는 소설의 영화화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또한, 그것은 소설과 영화 매체의 본질적인 차이가 무엇인가를 실감케 하기도 한다.
소설의 영화화란 소설을 액면 그대로 필름에 박아 내는 일이 아닐 터이다. 문자를 읽고 머리로 떠올려야 하는 소설과 사물의 움직임과 소리를 직접 보고 듣는 영화의 작동원리가 근본적으로 다르기도 하려니와, 원작을 복사하는 데 그친다면 영화 나름대로 창의나 독자성은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서편제 소리꾼 일가의 만남과 헤어짐
영화 <서편제>는 소설에 충실하면서도 소설을 뛰어넘는다. 유봉, 송화, 동호 등의 이름 붙이기도 그럴듯하고, 오누이의 관계가 원작과 뒤바뀌어 나온다든지, 유봉이 창극 순회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옛 동료들과 마주치는 부분, 그리해서 알려지는 스승의 첩과의 염문이나 파문당한 그의 과거사 따위는 원작에는 없는 것이다.
이 밖에도 동호에게 유봉의 뒤 소식을 전해주는 그림쟁이의 설정이며, 판소리가 서양음악에 밀려나는 서글픈 장터 풍경, 또 유봉의 고집스러운 성격과 소리에 대한 완강한 집착 등은 이 작품을 소설에서 벗어나 영화로 홀로 서게 하는 대목이다.
소설이 영화화되는 것을 살펴보면, 원작이 본디 베스트셀러인 까닭에 그 명성에 힘입어 성공을 거두는 영화가 있고, 반대로 영화가 유명해지자 소설이 뒤늦게 주목을 받는 예도 있다. 과거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1973)이나 조해일의 <겨울여자>(1976)가 전자의 보기라면, <서편제>는 후자를 대표한다.
이미 1970년대에 발표되었던 소설이 요즘에 인기소설의 순위에 올라 있는 것은 순전히 영화의 덕분이 아닐 수 없다.
판소리의 아름다움을 담은 영화
<서편제>의 영화적 의의는 무엇일까. 그것은 뭐니 뭐니 해도 판소리를 처음으로 스크린에 끌어들였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제껏 이토록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애초 이 영화의 기획은 상당히 모험에 가까웠지 않을까 싶다. 이 영화에는 전편에 걸쳐 많은 민요와 판소리 더늠이 담겨 있다.
동호가 소리재 주막에서 세월네에게 소리를 청하는 도입 부분에서부터, 유봉이 아들과 딸에게 소리를 가르치고, 떠돌며 밥벌이를 하고, 득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산속에서 수련하고, 마침내 오누이가 만나 소리로 하나가 되는 과정까지 숱한 ‘소리’들이 관객을 취하게 하였다.
우리 땅의 소리와 풍경
더욱이 우리나라 사계의 빼어난 산수풍경이며 전통가옥의 토속미를 살린 촬영감독 정일성의 노련한 영상은 작품의 격조를 한층 높이고 있다. 그의 장인다운 카메라는 사라져가는 한국적인 풍경을 애써 붙잡으면서, 우리 고유의 소리와의 절묘한 조화를 이끌어 낸다.
특히 한 시골길에서 세 사람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흥겹게 춤추는 장면은 그 한국적인 멋 못지않게, 한 자리에 오랫동안 고정되어 찍는 카메라 기법이 놀랍다. 그리고 영화의 절정 부분을 오로지 창을 통해 진행하는 점도 가히 판소리 영화답다고 할 것이다.
남달리 애틋한 정을 가졌던 두 오누이가 오랜만에 다시 만나 밤새 신명나게 소리와 북장단이 어울리며 감정이 고조되고, 눈을 빛내며 환희의 절정을 맞는다. 오로지 소리로 시작하여 소리로 정회를 푸는 이러한 결말처리는 어지간해서는 생각해내기 어려운 기법이라 할 것이다.
서편제 OST <소리길>과 <천년학>
또한, 이 영화를 수놓는 주제가 <소리길>과 <천년학>의 처연한 선율은 어떤가. <젊은 그대>와 <못다 핀 꽃 한 송이>를 부른 가수 김수철이 작곡했다고 하니, 그의 놀라운 음악적 변신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영화에 아쉬움이 눈에 띈다. 먼저 여주인공 송화의 성격이나 심리가 구체화 되지 못한 점이 눈에 뜨인다. 유봉의 장인적인 집념이나 반항적인 동호의 성격이 뚜렷이 살아 있는 데 비해, 송화의 성격은 지극히 수동적으로만 비친다.
한을 심어 줄 요량으로 아비가 눈을 멀게 할 때, 당사자인 송화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때 송화의 비애감이나 내적인 아픔 같은 것이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야 하지 않았을까. 또 그가 득음에 이르도록 수련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고뇌가 좀 더 치열하게 표출되었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송화의 시종 젊은 모습도 옥에 티가 아닌가 싶다. 회상 장면에서의 송화는 물론 젊은 나이다. 그렇지만 세월이 흘러 남매가 다시 만나는 현재시제로 돌아왔을 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송화의 얼굴은 어느덧 세월의 켜가 앉은, 풍상을 두루 거친 중년 여인의 그것으로 변모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심청가>의 부녀상봉을 노래하는 득음에 이른 원숙한 소리에 비할 때, 아직껏 검정 머리 그대로인 모습에서는 그가 살아온 한스러운 밑바닥 삶과 세월의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다.
소설로서 <서편제>는 판소리를 소재로 삼을 때부터 이미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무리 작가의 묘사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글로 판소리의 다채로운 맛과 멋을 오롯이 표현하기가 쉬운 일이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화 <서편제>는 소설의 한계를 쉽게 극복하고, 감칠맛 나는 소리의 진수를 관객에게 만끽해 줄 수 있는 점에서 소설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한국의 소리, 한국의 풍경이 이 영화의 주역”이라는 「샘이깊은물」의 김홍숙 씨 평도 바로 이러한 영화미학의 특성을 지적한 것이라 하겠다.
한국의 소리미를 담은 작품
비록 영화 <서편제>가 부분적으로 한의 형상화나 성격 표현에 미흡한 점이 있다 할지라도 그가 가진 많은 미덕에 비하면 그 정도는 모래알에 지나지 않는다. 판소리를 처음 영상화했으며, 우리의 산천경개와 우리의 가락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들어진가를 다시금 인식시켜 준 것만 가지고도 이 영화는 충분히 제 몫을 해냈다고 본다.
그것은 갈수록 외래문화가 위력적으로 우리의 혼을 파고드는 현실을 생각해 볼 때 더욱더 그러하다.
* 해당 내용은 해드림출판사의 허락하에 장병호 영화이야기 [은막의 매혹]에서 인용과 참조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