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박물관을 찾아서
부여 박물관을 찾아 고속도로에 들어선다. 목적지는 있어도 시간 제한이 없는 여행이라 여유가 흐른다. 문득 나의 여행지 범위를 생각한다.
여행지를 다녀보면 우리나라가 넓은 건지, 내가 활동 영역이 좁았던 건지에 대해 자문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경제적 안정을 이뤄놓고 유유자적하려는 가장의 책임감만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설악산도 두 아이들이 대학을 마친 후에야 다녀왔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당초 설악산 코스가 계획되었다. 하지만 다른 학교 수학 여행단 버스가 설악산에서 추락 사고가 일어났던 관계로 급히 설악산에서 속리산으로 바뀌는 바람에 설악산을 뒤늦게야 가보게 된 것이었다. 물론 강원도 출장을 가거나 이런저런 모임 때 설악산 도로를 지나갔지만 숙박은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부여로의 첫나들이
주말에 난생처음 부여를 다녀왔다. 백제를 이야기할 때는 결코 부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좀체 부여로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부여라는 지명이 내게는 서울보다 더 멀리 느껴졌다. 지금껏 가보지 않은 곳의 낯설음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 부여박물관이 재개관된다는 기사를 보았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야 부여 방문 계획을 세웠다. 함열, 익산을 지나 부여로 들어서는 데, 가슴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기분 같아서는 1박을 하며 좀 더 부여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이번엔 부여박물관으로만 정했다.
부여박물관의 모던 아트
예상대로 부여박물관은 모던스타일로 아담하게 재단장되어 있었다. 원형구조의 각 전시방마다 주제를 두고 유물을 전시해 놓았다. 백제의 역사를 주변국과 비교하며 헤아릴 수 있도록 각종 도표를 그려놓아 이해가 쉬웠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 및 영향을 유물을 기준으로 표기해 놓아 좋았다.
백제금동대향로의 미와 권력
전시유물 중에 석조사리감이 인상적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승리의 여신인 사모트라케의 니케 여신상이 떠올라 한동안 바라보기도 했다. 이번 전시유물 중엔 단연코 눈에 띈 것이 있었다. 독립전시실에 별도 전시되어 있는 국보 287호인 백제금동대향로였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신선의 신산을 장식한 향로이다. 뚜껑에는 봉황이 앉았고 다섯 방향으로 쌓아 올린 봉우리의 형상이었다. 여기에는 수련과 명상을 하는 인물과 상상의 동물들이 묘사되어 있었다. 금동대향로는 지배자의 권력과 소우주에 대한 통치권의 상징을 나타낸다고 한다.
죽마고우와의 추억
부여를 다녀오며 오래된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고딩 1학년 때 죽마고우와 단 둘이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과 계룡산에 다녀온 기억이었다. 텐트 치고 1박을 하며 갑사, 동학사, 남매탑을 다녀온 여행이었다.
당시 국어 교과서에는 “갑사 가는 길”이 실렸었다. 지금도 국어 교과서에 있는지 궁금한데, 남매탑의 전설을 헤아리고자 친구와 기차 여행을 간 것이었다. 이 여행이 나에겐 학창 시절의 유일무이한 친구와의 여행이었다.
집에 돌아와 먼지 쌓인 앨범을 펼쳐보니 그때의 빛바랜 사진이 고이 간직되어 있다. 언젠가 친구와 다시, 그때를 회상하며 바늘과 실의 추억을 되살려 기차여행을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