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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파리 여행(제11화)
저녁 비행기 출발까지는 오후 반나절 여행 시간이 남았다. 에밀 졸라 거리와 김환기 화백이 살았던 세느강변의 생 루이 섬은 시간 관계상 다음 여행으로 기약한다.
오후의 마지막 여정인 미테랑 국립 도서관을 향한다. 일반인은 세계최초 금속활자본인 우리나라 <직지심체요절>은 볼 수 없겠지만, 과연 미테랑 국립도서관에는 한국 작가의 어떤 책이 소장되어 있을까.
파리의 오후 여정
미테랑 국립도서관에 도착했다. 과연 세계적 도서관의 규모다. 아르누보 풍이 아닌 모던 스타일이다. 그래서일까? 파리의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아직 가 본 적이 없는 뉴욕의 도서관 같다. 4권의 책을 세워 펼 쳐 놓 은 듯 한 외관이다.
오늘 미테랑 국립도서관에 오고 싶었던 것은 두 가지다. 우리나라 어느 작가의 책이 소장되어 있는지와 파리국립도서관 사서들의 분위기를 살펴보고 싶다.
외규장각 의궤 반환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 고속철을 프랑스 TGV 기술로 결정한 양국 정부는 외규장각 의궤반환에 합의했다. 하지만 반환할 수 없다며 울부짖는 파리 국립도서관 여성 사서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쳤다. 그 여성 사서가 누구인지도, 지금도 근무하고 있는지 어떤지도 모른다.
여성 사서 혼자만의 반발은 아니었겠지만, 양국 원수가 서명한 외교에까지 항명했던 국립도서관 사서들의 자긍적 분위기를 내 눈으로 살펴보고 싶은 것이다.
워낙 도서관이 넓어 이리저리 출입구를 찾는 데 건물 한쪽으로 조기가 게양되어 있는 게 보인다. 혹시 여기도 테러 방지를 위한 임시휴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영화 제목처럼 출발할 때 설마 했던 느낌이 적중했다. 왜 불길한 예감은 적중률이 높은 걸까. 이건 머피의 법칙으로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입장을 한다고 해도 왕오천축국전이나 직지심체요절(하권)은 볼 수 없겠지만, 루이 14세에 의해 제작된 당시 우리나라 지도의 모습과 한국 작가의 책들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다음을 또 기약할 수밖에. 도서관 계단에 걸터앉아 세느강을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도서관에 대해 몇 가지 단상이 아른거린다.
도서관의 긍정 프레임
왜 도서관은 긍정의 프레임에 싸여있을까. 마치 나쁜 짓을 하고 도망가도 쫓아가지 못했다는 고대의 소도처럼 신성불가침 영역처럼 여겨지니 말이다.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책 읽고 공부한다는 말에 결코 화를 내거나 욕을 하지 않는다. 특히 부모들은.
이런 분위기를 잘 이용하는 것이 학생이고, 부모들 또한 이런 학생시절을 겪어왔다. 책이 무얼까. 공부가 무얼까.
나는 어디를 가든 서점에 머무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도서관의 책들은 왠지 반갑지가 않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내가 직접 돈 주고 구입한 책만이 잘 읽힌다. 이것도 소유욕이라면 소유욕이다. 그러나 책 또한 긍정의 프레임에 싸여있다 보니 읽지 않은 책이 넘쳐도 아내의 잔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다행이다.
도서관과 카레
평소에 맛있게 먹다가도 도서관을 떠올리면 지겨워지는 음식이 있다. 카레다. 휴일의 학창 시절, 점심과 저녁까지 도서관 카레를 먹고 밤늦게 집에 도착하여 출출한 배를 채우려는데 또 카레요리가 올라왔을 때의 낭폐감. 이런 우연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 도서관과 카레의 악연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꼭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카레요리를 하던 누나도 알고 있었다. 궁핍한 자취생의 가장 만만한 요리가 카레였기에.
도서관과 커피의 추억
도서관하면 잊히지 않는 모습도 있다. 커피를 마시던 어느 여학생의 뒷모습이다. 아마도 내가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게 된 계기였다고도 할 수 있다. 학교와 병역을 마치고 취업을 위해 도서관을 다닐 때였다. 복도 끝에서 일광욕을 즐기듯이 오후의 햇살을 한껏 받으며 창가를 내려다보는 어느 여학생의 뒷모습이 눈에 띄었다.
빨간 티의 청바지 차림에 소리 없는 깊은 상념에 젖어 한 모금한 모금 조심스레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었다. 소탈한 모습답게 손끝에 들려있는 하얀 종이 커피의 분위기가 커피의 고소함을 넘어 달콤함을 느끼게 했다. 이후 커피는 나에게 소중한 취향이 되었다.
아내도 자판기 종이 커피를 좋아한다. 언젠가 나를 기다리던 중에 빨간 티를 입고 종이 커피를 조용히 마시고 있는 뒷모습을 보았다. 청바지를 즐겨 입지 않아 면바지 차림의 아내였지만 그때의 여학생 모습이 오버랩되어 속으로 가만히 웃었던 적이 있었다.
파리를 떠나는 아쉬움
이제 저녁 비행기를 타기 위해 드골공항으로 가야 한다. 테러 여파로 검문검색이 강화되어 평소보다 출국장에 미리 도착해야 할 것 같다. 이 예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개선문이 있는 드골 광장에서 리무진을 탄다. 이제 파리를 떠난다는 아쉬움에 젖는다. 문화적 사대주의를 떠나서 꼭 다시 찾고 싶은 파리다. 오늘따라 선글라스를 낀 기사마저 멋져 보인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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