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보 다리 아래 흐르는 아폴리네르와 마리 로랑생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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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파리 여행(제6화)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파리 여파로 여행 분위기는 식어 있지만 나홀로 여행이기에 정중동의 느낌으로 파리에 젖는다. 6시 30분 호텔 바이킹 식사를 하고 조금 이른 시각에 세느강으로 향한다. 의외로 날씨가 포근해 에펠탑을 바라보며 세느강변을 거니는 것이 무척 즐겁다.

어제 다리가 피곤해 포기했던 미라보 다리에 도착했다. 당시의 최신 공법이었던 철골조라 운치는 없다. 하지만 저멀리 에펠탑과 자유여신상이 보이는 뷰에서는 제법 운치가 느껴진다. 세느강을 바라보며 시집 대신 네이버 창을 열어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를 조용히 낭송한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

마음속 깊이 새겨두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후략)

미라보다리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아폴리네르가 그토록 사랑했던 마리 로랑생. 내 청춘시절에는 미라보 다리의 아폴리네르보다 잊혀진 여인의 마리 로랑생을 더 좋아했다. 목마와 숙녀의 박인환 시인이 운영했던 마리 서사의 책방 이름을 마리 로랑생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해서 관심이 더 갔는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라는 시구로 알려져 있는 실제 원문에 ‘여인’이라는 단어는 없다고 한다. 번역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죽음보다 더 불행한 것은 잊혀지는 것이다, 라는 문장이 원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류시인의 시이기에 잊혀진 여인으로 의역된 표현을 나는 더 좋아한다.

아폴리네르와 마리 로랑생의 진실

아폴리네르와 로랑생의 이야기를 좀 더 들여다보면, 마리 로랑생은 잊혀진 여인이 아닌 스스로 잊혀지게 된 여인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사랑에는 상식과 에티켓이 없다고 하지만 루브르 모나리자 도난 사건 때, 아폴리네르에게 보여준 로랑생의 행동은 사랑의 진정성을 의심할만 했기 때문이었다.

문득 생각 나는 사람이 있어 미라보 다리에서 고개를 돌려 저 멀리 건너편 지하도를 바라본다. 그곳은 영국의 황태자비였던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곳이다. 다이애나도 지금 누군가에게는 잊혀진 여인이 되었을까?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은둔

지휘자가 사랑한 지휘자로 유명한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있다. 그는 자신의 유명세에 비해 극히 제한된 지휘만을 했을 뿐, 항시 대중을 떠나 살았고 외딴 별장에서 아무도 모른 채 죽음에 이르렀다. 몇 해 전 클라이버의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라는 타이틀로 다큐멘터리 DVD가 나왔다. 이 제목은 원래 시인 뤼케르트 시에 말러가 가곡으로 만든 곡이라고 한다.

말러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

말러는 교향곡 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에 가곡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의 분위기와 모티브를 사용했다고 한다. 엘가의 ‘님로드’와 같은 구슬픈 분위기가 느껴지는 멜로디인데 제목이 자꾸만 잊혀지지 않는다. 자기 연민에 빠질 때면 자주 생각하는 제목이기도 하고.

잊혀진다는 것의 서글픔

잊혀지고와 잊히고는 어떤 뉘앙스 차가 있을까. 전자는 인위적이고 후자는 자연적이다. 전자는 인과가 느껴지지만 후자는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잊혀진다는 건 아무래도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꼭 불행하다고만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언젠가 나도 세상에서 잊혀질 테니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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