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트에서 에릭 사티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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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파리 여행(제9화)

파리 국민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 변화

파리 여행 시작 전에는 파리 국민의 7프로가 이민자인지 몰랐다. 한때 알제리를 식민지로 두었다지만 파리 시내에 흑인(대체할 만한 단어가 없을까?)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파리 오기 전의 선입견을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파리 시민은 모두 알랭 들롱, 소피 마르소 같은 스타일의 시민일 거라 생각했다.

지하철을 타보니 아무리 대중교통이라지만 나를 비롯해 유색인이 더 많았다. 그들은 그런지 패션(grunge fashion)을 주로 입어서 그런지 외모 자체가 험상궂게만 보여 처음엔 지하철 타기가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며칠 시간이 흘러 자주 보고 말도 걸어보니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미소를 지닌 사람이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닫게 된 귀중한 경험 중의 하나다.

몽마르트 언덕을 향하여

파리에서 생활하다 은퇴 후 서울에 사는 지인 누나에게 문자를 한다. 세느강변을 좀 더 돌아보고 비행기를 탈거라는 문자전송을 마친다. 몽마르트는 가지 않았다는 말에 누나의 문자가 도착한다.

몽마르트의 가을은 보고 와야지?

원래 이번 여행에서 몽마르트에 갈 생각이 없었다. 오늘날의 그곳은 유흥가로 변질되고 집시의 소매치기와 흑형들의 강매 바가지의 천국이라는 부정적 선입견이 있어서였다.

특히, 피카소가 페르낭드를 만나 청색시대에서 장밋빛 시대로 예술의 열정을 쏟을 때 머물렀던 세탁선이 없어졌다기에 그곳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몽마르트를 향한다.

명화와 그림 배경의 탐방

막상 몽마르트를 향하고 보니 독서를 통해 기억한 예술인의 몽마르트 이야기가 밀물처럼 밀려든다. 우선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가 떠오른다. 파리의 번성과 화려함이 근세 최고의 시대였다는 벨 에포크를 이 그림에서 실감 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엊그제 오르세 미술관에서 꼭 감상해야 할 그림이었다. 테러의 여파로 감상을 못한 아쉬움을 대신하여 이 그림의 배경장소를 찾아가기로 한다.

여행 캐리어를 끙끙거리며 몽마르트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경전철을 이용하면 쉽게 오를 수 있겠지만 골목을 직접 거닐고 싶은 마음에 땀을 흘리며 올라간다. 일부 시민이 희생되었던 파리코뮌의 아픔은 광주518과 함께 시간에 묻혔는지 그때의 골목은 의외로 호젓하고 아기자기한 멋이 있다.

물랭드라갈레트

몽마르트 시대의 예술가

구글 앱지도 덕분에 물랭 드 라 갈레트 그림의 배경장소를 찾았다. 지금은 무도회 장소가 레스토랑으로 바뀌긴 했지만 르누아르의 그림 사진과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그나마 반갑기 그지없다.

몽마르트 주택가 골목에 들어서며 이곳에 살았던 빈한의 예술인을 생각한다. 에릭 사티와 수잔 발라동, 그녀의 아들인 백색의 화가 위트릴로까지.

그들의 예술은 美에 앞서 일탈의 기행이 작품 배경이 된 듯하다. 고집 센 그들의 행보 이면에는 값싼 낭만주의의 나약함이 있다고 했다. 더불어 살지 못하는 나약함은 비극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예술인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일까, 짐노페디 가구 음악처럼 서글프게만 살았던 에릭 사티가 생의 마지막에 남겼던 말이 의미심장하다. 그는 사회의 유리 천정에 대해 다음처럼 이야기했다.

나는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왔다.

사티와 발라동 그리고 위트릴로까지 당시에 그들이 머물렀던 곳을 찾아가고 싶다. 하지만 자료 검색 결과가 여의치 않다.

아쉬운 마음으로 골목의 풍경을 살피며 걷는데 흰 빛으로 채색된 아담한 집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이런 분위기에서 위트릴로는 백색의 화가가 되었던 것일까? 백색의 적막한 골목 풍경에서 위트릴로의 환상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위트릴로는 어머니 수잔 발라동과 함께 몽마르트 시대를 반항과 방황으로 질곡 된 화가로서 살다 갔다. 그래도 그가 남긴 백색의 풍경은 쓸쓸함 속에서도 살가움이 느껴지는 마력이 있다.

내가 살았던 골목은 백색 풍경까지는 아니었지만 좁다란 시골골목의 권태와 고즈넉함의 기억이 위트릴로의 백색 그림과 닮았기 때문이리라.

테르트르광장

테르트르 광장과 예술인의 삶

무명 화가들의 삶의 현장인 테르트르 광장에 도착한다. 그들의 캔버스에는 여행자의 캐리커쳐 초상화만 그려지고 상업화된 거래 분위기에 약간의 서운함을 느낀다. 예술인의 생활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우두커니 서서 예술인의 기본 소득제 정책을 생각한다.

사크레쾨르 성당은 나에게 전혀 매력적이 않다. 평소 버스커와 집시와 흑형과 더불어 여행자가 붐빈다는 성당계단에는 테러의 여파인지 한산하기만 하다. 몇몇 중국의 단체 여행객과 군인만 경계 근무를 할 뿐 여행객이 거의 없다. 나는 오히려 잘되었다고 흡족해한다.

사크레쾨르 성당 계단에 앉아 파리시내를 조용히 내려다본다. 마음이 편하고 여유롭다. 파리도 도쿄처럼 산이 보이지 않는다. 산이 가까이 있는 서울은 이 얼마나 크나 큰 축복인가. 배산임수라는 풍수지리의 미학까지.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며 한참 멍 때리기를 마친 후, 몽마르트 언덕을 내려간다. 노천카페서 커피와 간식을 먹은 후, 미테랑 국립도서관을 향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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