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그에도 커피향은 흐른다
커피향의 행복
가끔은 고급스런 커피점에 앉아 누리는 호사가 행복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커피향이라는 분위기는 잠시나마 진부한 일상에서 벗어나 보다 풍성한 여유로움으로 채울 수 있다는 자기 만족감이다. 이는 누구든 마실 수 있는 커피 한 잔까지도 일상의 행복으로 여기려는 내 삶의 변화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인생찬가
어린시절 거울을 파는 가게나 이발관에 가면 꼭 눈에 띄는 액자 하나가 있었다. 가로형으로 만들어진 유리액자에 세로쓰기로 씌여진 롱펠로우의 “인생찬가”라는 詩의 일부였는 데, 내 어린시절의 야망을 키워주는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어린시절 이발하는 시간은 참으로 지루했다. 이쁘게 깎아 줄 테니 움직이지 말라는 이발사 아저씨의 주문은 나에게 있어서는 엄한 경고로 여겨져 호흡까지도 조심스럽게 내뱉는 부동의 자세를 취해야 했다.
특히 추운 겨울 날, 바리깡이라고 불리었던 수동식 이발기의 차가운 쇳기운이 뒷덜미에 전해지는 순간은 주사바늘이 살갗에 꽂히려는 순간만큼이나 공포스러웠다. 가끔은 이발기에 머리카락이 찝히는 경우도 있었는 데, 이때는 눈물이 찔끔거리도록 따가웠지만 부동자세의 의미를 위해서는 참아야만 했다.
이런 고통이 느껴지는 과정에서도 내 시야엔 언제나 ‘인생예찬’의 액자가 눈에 띄었다. 불면의 밤에 애써 잠들기를 위해 숫자를 반복하듯이 어서 이발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액자의 싯구를 재차 삼차 묵독을 하였다.
롱펠로우의 다짐
반복해 읽어보는 싯구 중에 “인생의 노영안에서 말없이 쫓기는 짐승이 되지말고 싸움에서 이기는 영웅이 되거라”라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어린 마음에도 섬뜩한 전율이 느껴지며, 나 또한 사회에 나가면 결코 쫓기지 않는 승리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기에 이르렀다.
성공이란, 어떤 일에서든 물러나지 않고 반드시 승리자가 되는 것이라는 기준을 세우게 된 것이다. 어린시절과 청춘기를 보내면서도 이런 성공의 목표는 변함이 없었고 가장이 된 이후에도 롱펠로우의 잠언은 절대적인 목표였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차범근선수가 독일 프로축구의 분데스리거가 되고, 박찬호선수가 미국 프로야구의 메이저리거가 되고, 최경주 선수가 미국 프로골프 PGA정규회원이 되고, 박지성 선수가 영국 프로축구의 프리미어리거가 되면서 프로의 세계를 짐작하게 되었다.
또한 프로의 세계는 크게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로 나뉘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메이저리그는 성공한 자들의 본선무대이고 마이너리그는 아직 성공을 이루지 못한 자들의 예선무대였다.
우리 사회에서도 개인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층이 형성되고 있지만 큰 그림에서 보면 우리가 사는 삶의 세계도 메이저리거와 마이너리거가 있다고 여겨진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세분화를 해보면, 개인의 능력이든 집단의 배경이든간에 경제력 또는 사회적 성공을 바탕으로 형성된 메이저리그가 있고, 서민의 삶으로 살아가는 중산층의 마이너리그가 있고, 저소득의 궁핍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빈곤층의 3류리그가 있다고 여겨진다.
각 리그에 속한 리거들은 자신의 리그에서의 자격과 범위에서 안주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메이저리그로의 승격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분투하며 살아간다.
사회적 성공과 메이저리거
나 또한 부모형제의 기대에 부응하고 내 가족에 대한 의무와 책임의 절대적인 명제는 사회적 성공이었다. 따라서 롱펠로의 잠언이 아니었드래도 당연히 메이저리거를 꿈꿨을 것이다. 그러나 지천명을 지나고 있는 나는 아직 마이너리그에 머물고 있다.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한 능력과 환경이 아직도 내 기준의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도 메이저리거의 목표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끝내 못 오른다고 하더라도 마이너리거로써의 패배의식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내 삶의 방식이 변화됨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거와 마이너리거의 자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과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메이저리거가 되어 경제적 부를 이루어 남들보다 고급생활을 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능력의 한계와 마냥 주어지지 않는 내 인생의 시간제약을 느꼈기에, 최선이 아니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차선의 방법으로 삶의 지혜를 찾아가는 것이다.
마이너리거의 미소
내가 속한 문학회 회장께서 대학원 특강을 위해 광주에 온 적이 있다. 강의 내용이 궁금하여 학생들과 함께 자리를 했는 데, 그 중 정글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이야기 했다.
정글에서 맹수에 쫓기에 되었을 때, 전력으로 달려 1등으로 안전하게 살아 남는 방법이 있지만 마지막에서 2등을 해도 살아 남는 다는 이야기였다.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으로도 생존의 방식이 되는 것이며, 이는 내 삶의 마이너리티 안에서의 생존방식이 된 것이다.
어찌보면 나의 성격도 애시당초 마이너리그에 적합하도록 길들여졌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려서부터 새 옷을 사면 곧장 입지않고 며칠이 지난 후, 마음 속으로 새옷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 때면 그때서야 그 옷을 입었다. 새 신발을 샀을 때에도 일부러 약간의 흙을 신발에 묻혀 얼룩을 만든 후에야 신을 수 있었다.
그저 탁틔인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족과 함께 앉은 식탁에 나에게만 특별히 큰그릇으로 음식을 담거나 지나치게 선별적인 반찬이 놓여질 때에도 난 거부감을 느낀다. 특별대우가 싫어서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마이너리그로 추락하지 않기위한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이지만, 한 발짝 물러 선 마이너리그에서는 자신의 성격과 철학에 따라서는 잔잔하고 여유로운 장이 될 수도 있다. 당당히 메이저리그를 지키는 명예와 자부심도 행복이겠지만 마이너리거로써의 자기만족도 행복이 될 수 있다.
마이너리그에도 커피향은 흐른다
결국, 내 가족의 건강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것과 작은 행복에 만족하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다. 비록 내 삶에 환호하는 관중은 없을 지언정 내 삶의 마이너리티 안에서 갖는 커피향의 여유는, 오늘도 내 행복 속에서 은은한 미소로 흐르고 있다.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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