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돌고돌고
산사의 평온한 분위기와 염원
강천사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일탈의 기분이 느껴져서이다. 산사의 정적인 분위기에 젖어 고즈넉한 풍경 속으로 정체된 긴 한숨을 토해낸다. 정화된 기분이 폐부 깊숙이 녹아든다. 산사를 좀 더 자주 찾을 수 있기를 매번 기원하지만 언제나 염원에 그친다. 돌아서면 망각에 빠지고 망각을 지나면 또다시 염원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였던가.
젊은 날의 향수와 비구니
갓 성인이 되던 해에 갑작스레 선친을 여읜 슬픔이 남아서였는지 지난날의 나의 젊음은 온통 잿빛 수채화였다. 인생의 허무와 궁핍을 끼고 살았던 나날이었다. 그 시절 강천사의 비구니가 쓴 자전적에세이 “나는 왜 속세를 떠났는가”를 읽은 적이 있었다.
비평준화 시절에 광주의 명문여고를 다니다 중퇴하고 비구니가 된 사연의 글이었는 데,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이어서인지 출가승의 애처로움에 한껏 동화되어 까닭 모를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강천사는 당시의 완행버스로 2시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기에 조만간 찾아가 보리라 마음 먹었지만, 교통이 불편했던 시절이었기에 차일피일 미루다 친구들과 찾아갔던 게 크리마스이브 날이었다. 저잣거리는 캐럴에 휩싸여 들뜬 분위기였지만 산사의 밤은 적막강산이었다.
비구니와의 만남과 고요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은 다음 날 아침 일찍 경내를 둘러보았다. 인적은 없고 침묵만이 흐르는 도량을 산책하다 스님들 처소를 지나게 되었다. 하얀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인 댓돌을 지나 부엌을 기웃거리는데 등 뒤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거기는 출입하는 곳이 아닙니다.“라는 조용한 음성이 들린다. 비구니이었다.
강천사에는 여러 비구니가 수도 중이었지만 눈대중으로 두 눈 크고 얌전하게 생긴 얼굴이 그 책에서 각인된 주인공 같았다. 비구니를 만나면 몇 마디 건넬 심산이었지만 선입견이 강해서였는지 비구니의 얼굴에서 속세의 일반인은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느꼈다. 결국 한마디 말도 건네지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강천사의 변화와 현대화
30여 년이 지난 지금의 강천사는 많이 변해있었다. 흑백 분위기가 컬러 분위기로 바뀌었고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 많이 들어선 관계로 현대화된 관광지의 사찰 분위기가 되었다. 인공폭포도 생기고 구름다리도 생겼다. 산문 입구엔 대형 주차장과 현대화된 식당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강천사가 변했듯이 나 자신도 많이 변했다. 지금 이후로도 강천사는 더 변할 것이고 나도 더 변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아내와 법당에 들어 간단한 예불을 드리고 강천사를 돌아 나온다. 산문을 들어서게 되면 법당을 향해 걷기에 세세한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산문을 나서게 되면 주위의 풍경을 유심히 살피며 걷게 된다.
계곡을 따라 우거진 노송의 잔가지 사이로 다람쥐와 흡사한 청설모가 언뜻언뜻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다 쏜살같이 사라진다. 찰나의 순간은 이보다 얼마나 더 짧은 시간일까를 헤아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생활의 하루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단조로움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하루의 루틴과 반복
9시 출근길에 야쿠르트 아줌마를 만나고, 교차로 신호대기를 기다리는 중에는 길 건너 편의점의 주인과 시선이 마주친다. 10분 거리의 사무실에 당도하면 아침 청소 중인 건물주 식당주인과 아침인사를 나누게 된다.
12시가 되면 식당주인의 분주한 모습을 바라보며 식사를 위해 집으로 향한다. 교차로 신호등에서는 무의식적으로 편의점 주인을 바라보게 된다. 편의점 주인은 내 시선을 피해 벽시계를 바라보며 정오를 짐작 하는 듯 하다. 점심휴식이 끝나고 사무실을 향하는 길에는 언제나 우체국 집배원을 만나거나 우편물이 수북한 빨간 오토바이를 보게 된다.
저녁 6시 퇴근길엔 식당주인과 유리창 너머로 퇴근인사를 전하며 신호등을 기다리며 편의점의 새로운 알바생들의 표정을 살핀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면 병원의 주간근무를 마치고 제시간에 퇴근해 오는 아내가 보이는지 아파트 주위를 살핀다.
저녁 식사 후 가벼운 산책을 하고 9시 뉴스를 보고 밤늦은 아이들 마중이 끝나면 자정이 가까워져 온다. 라디오 심야 음악프로를 들으며 작은 회사의 오너로서 일인다역의 밀린 일을 처리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지인과의 모임이나 집안의 행사가 없으면 휴일에도 큰 변화가 없다. 오전 집안의 잡무가 끝나면 오후엔 일주일에 못다 한 1인 다역의 밀린 일을 하고 저녁엔 가족과 산책을 한다. 9시뉴스를 보고 독서를 하고 맥주 한잔을 마시고 나면 일주일의 마지막이 끝나게 된다.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의 아쉬운 점은 내일은 잘하기로 반복적인 다짐을 한다. 나아가 올해 어려웠던 생활이 내년에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반복하고 가족의 안녕을 반복한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시작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한 생활이 무언가에 저당 잡힌듯한 아쉬움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사회생활이란 이런저런 사람과의 관계로 살아간다. 어느 학자의 이야기로는 자신과 알게 모르게 부딪치며 살아가는 지인의 관계가 300명 내외라고 한다.
내 휴대전화에는 거래처 전화번호까지 포함해서 100명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내 생활의 활동 영역이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한때는 이토록 단조롭게 반복되는 생활에 변화를 주려고 몇 가지 시도도 했지만, 지금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지천명에 접어든 요즘 들어서는 어쩌면 이런 단순하고 반복적인 생활이 나에게는 안정된 생활로 정착되어 가는 것 같아 생활의 변화에 조급해 하지 않는다.
나와 내 가족의 정서에 맞게 라이프스타일이 완성되어가는 정상적인 수순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다.
윤회설과 강천사를 향한 마음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 후회와 반성 그리고 기쁨과 즐거움의 반복은 불가에서 이야기하는 거대한 윤회설로 결부시켜 본다. 그리고 살며시, 오던 길 뒤돌아서 강천사를 바라보며 마음속 합장을 한다. 돌고돌고돌고.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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