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오다이바에서 즐긴 탁족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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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낭만과 탁족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무더운 여름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이다. 오래전 SNS를 뒤적이다 보니 두 개의 메모가 남아있었다. 2013년과 2016년, 그 해 여름의 기억들이었다.

밤새 열대야를 잊으려 라벨의 음악을 들으며 소설 속에 푹 빠져있던 나. 이 소설의 제목은 라벨이 만든 협주곡과 같은 이름을 가진 작품이다. 무더운 여름마다 이 소설이 떠오르는 건 아마도 생맥주를 마시며 나눈 깊은 대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

포크의 세 개의 창과 사랑

소설 속에서 생맥주를 나누며 들려준 포크의 “세 개의 창” 이야기는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첫 번째 창은 동정, 두 번째는 호의, 세 번째는 연민이라 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이 포크를 겨눌 때, 여자는 세 개의 창을 모두 녹여 하나의 사랑으로 만들려 하지만, 남자는 오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창만을 내민다는 이야기. 박민규 작가 특유의 B급 철학이 참 재미있고도 통찰력 있게 다가온다.

무더위를 피하는 취향

최근 들어 소설과 음악만으로 무더위를 쫓는 데 한계를 느낀다. 문학에 대한 열정이 식은 걸까, 아니면 체력이 떨어진 걸까? 아무래도 후자일 것이다. 문명의 이기, 에어컨의 시원함에 몸을 맡기고 평온함 속에 빠져드는 나를 부정할 수 없다.

무더위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놀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계곡보다는 하얀 모래사장과 밤의 낭만이 있는 해수욕장이 나에게는 더 어울린다. 하지만 요즘은 번거로움 때문에 선뜻 피서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냉방이 잘된 카페나 호프집의 익숙함이 더 좋다.

선조들의 탁족

옛사람들은 여름을 어떻게 보냈을까? 아마도 물놀이가 대세였을 것이다. 특히 등목과 탁족이 떠오른다. 다산 정약용은 더위를 물리치는 방법으로 탁족을 강조했는데, 그의 아들 정학연도 ‘더위를 물리치는 여덟 가지’를 시로 남겼다. 그중에서도 탁족은 장수에 좋다고 했다.

이 시어가 맹자의 글에서 나왔으니 성리학의 냄새가 풍긴다. 등목과 탁족이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조선 시대 여성들은 어떻게 여름을 보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도쿄 오다이바에서 즐긴 탁족의 추억 1
한여름날 오다바이 해변의 온천에서 즐긴 탁족

도쿄 오다이바에서 즐긴 탁족

한때 도쿄 시나가와에서 근무할 때, 여름이 오면 동경만의 바다 내음이 그리워 자주 산책을 나갔다. 레인보우 브리지가 보이는 해변공원에서 태평양의 바닷물과 맞닿은 도쿄 오다이바의 백사장을 거닐며 거품 가득한 생맥주를 마시고, 인근 온천장에서 탁족을 하곤 했다.

시원한 계곡물이 아닌 뜨끈한 온천수에 발을 담그는 경험은 이색적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며 무더위를 잊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매년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맞이했던 무더위 속에서 한때는 젊은 태양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태양 같은 열정을 불태웠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조용히 관조하는 마음으로 성하의 계절을 보낸다.

처서를 기다리며

내일은 태풍 9호 태풍 “종다리”가 북상 한다는 일기예보가 있다. 이번 태풍이 지나 가면 무더위도 한풀 꺾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음력 7월 중순이다.

음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했다. 며칠 후면 무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이기도 하다. 처서가 되면 서늘한 가을 바람이 느껴질까? 유독 마음 서둘러 처서를 기다리는 오늘이다.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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