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팝니다


남편을 팝니다

의문의 파일 발견

컴퓨터의 폴더를 정리하다가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는 파일을 발견했다. 파일명이 “남편을 팝니다”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잔뜩 긴장된 손으로 파일 내용을 클릭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저장되어 있었다.

남편을 팝니다!
사정상 급매합니다.
00년 0월 0일 00예식장에서 구입해 정품등록을 했지만 명의 양도해 드리겠습니다.
아끼던 물건인데 유지비도 많이 들고 성격장애가 와서 급매합니다.
상태를 설명하자면 구입당시 A급 인줄 착각해서 구입했습니다.
마음이 바다인줄 알았는데 장애가 심해져서 사용시 만족감이 떨어집니다.
음식물 소비는 동급의 두 배 입니다.
하지만 외관은 아직 쓸 만합니다.
사용 설명서는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읽어봐도 별 도움이 안 됩니다.
A/S는 안 되고 변심에 의한 반품도 절대 안됩니다.
덤으로 시어머니도 드립니다!!!

직장에서 교육위원을 맡은 아내가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교육자료로 참조하기 위해 저장해 놓은 파일이었던 모양이다. 놀랐던 가슴을 진정하며 잠시 한 여자의 남편으로써 나의 모습을 더듬어 보는 데 오래 전 직장 후배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IMF 와 직장의 와해

IMF가 구제금융이 시작되면서 내가 근무하던 회사도 화의신청을 하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일본 도쿄에 위치한 프로그램 개발업체로 직장을 옮겼고, 건축기사인 후배는 한창 건설경기가 일고 있던 두바이에 있는 한국인 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IMF를 극복하고 벤처열풍이 뜨거워질 무렵 나는 다시 광주로 돌아왔지만 후배는 두바이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15년 째 두바이에서 건축 팀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 연봉도 한국에서 받았던 것보다 두바이에서 소득이 훨씬 높았기에 해외근무를 계속하고 있었다.

경제적 여유도 넉넉해서인지 아예 본사가 있는 서울 강남의 고급아파트로 이사를 하여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받고 있었다.

후배의 우울

후배는 2년에 한 번씩 귀국하여 가족들 곁에서 1~2개월 휴가를 보내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서울 출장을 가는 날에는 어김없이 한잔의 술을 나누고 오는데, 어느 날은 후배와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며칠 후 늦은 시각에 광주에 왔다는 연락이 왔다.

초췌한 차림으로 나타난 후배의 얼굴은 우울함이 가득했다. 그동안의 상황이 궁금해 안부를 묻자 대답 대신 맥주컵에 소주를 따라 벌컥 마시더니 이내 응어리졌던 불만을 쏟아내었다.

형, 사람이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진 것 같아요. 가족들에게도요!”

“무슨 이야기야? 자네처럼 직장생활도 안정되고 아이들도 탈 없이 잘 커가고 있는 데…”

후배는 잠시 고개를 떨구더니 술 한 잔에 긴 한숨을 내뱉더니 그 간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용은 이랬다.
15년 간 가족과 오래 떨어져 살다 보니 2년에 한 번씩 휴가를 와도 가족의 모습이 낯설어 보인다는 것이다.

두 아이들과는 2,3일 함께 지내다보면 낯선 느낌이 사라지는 데, 부인과는 살가운 마음이 없어지고 뭔가 이질감이 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날도 부인과 점심 준비를 하다가 사소한 말다툼을 했다고 한다. 집을 나와 아파트 벤치에 홀로 앉아 담배를 피우며 곰곰이 생각했더란다.

부부 간의 차이와 이해

그 동안 후배의 부인은 두 아이가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귀가할 때까지 하루 종일 자유시간 이었다. 후배가 휴가를 오면 외출하는 데 눈치를 살펴야하고 식사 준비도 해줘야 하는 것이 부인에게는 불편함으로 작용 했었나보다. 후배와 같이 있는 시간이 되면 아내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고 출국하기를 바라는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불현듯 자신은 그저 돈버는 기계 같다는 느낌이 들자 피우던 담배를 급히 끄고 일어나 무작정 터미널로 갔다고 한다. 소지품은 휴대폰과 호주머니 지갑이 전부였는 데, 휴대폰 전원을 끄고 시골행 시외버스를 탔다고 한다. 그로부터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동가숙서가식으로 보름간을 홀로 떠돌다 이날 밤 늦게 나를 찾아온 것이다.

평소 평범하지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후배였다. 하지만 그의 하소연을 듣고 어떤 말로 후배를 위로하고 어떤 말로 이 부부의 위기를 극복해줘야 할까하는 생각에 내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뚜렷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 나 또한 그저 연거푸 술잔을 들이킬 뿐이었다. 결국 TV드라마의 사랑과 전쟁 같은 교과서적인 대답만을 해주고 그날 밤 후배와 취기만 지닌 채 쓸쓸히 헤어졌다.

얼마 후 후배는 예정을 앞당겨 출국한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후배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후 가끔씩 두바이에서 문자가 올 때마다 후배의 서러운 이야기를 떠올리며 안타까워했을 따름이었다.

남편

해외근무와 가족

나 또한 6년 여의 해외 근무 경험이 있고, 2년 간은 아내 및 가족과도 떨어져 살았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후배의 하소연이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와 후배는 상황이 달랐다. 난 고작 2년이라는 시간이었지만 후배는 15년이란 긴 시간이었다.

난 계절이 바뀌는 3개월을 주기로 휴가를 왔지만 후배는 2년을 주기로 휴가를 왔다. 그렇기에 나와 후배는 절대비교 및 상대비교가 될 수 없었다.

후배의 말처럼 그들 부부는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마저 멀어 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후배는 후배대로 부인은 부인대로 15년이란 시간 속에 자신들의 생활로 길들여진 것이다. 길들여진 습관이 부부라고 하루아침에 바뀌어 지지 않았을 것이다. 시차극복을 위해서는 일정 시간이 필요하듯이 이들 부부에게도 좀 더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가족이라는 정과 사랑의 마음으로 불편을 줄여나가는 노력을 위해 스스로 최면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후배 또한 휴가기간에는 당연히 부인과 항상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을 줄여야했고, 부인 또한 후배와 함께 외출하는 시간들을 조금씩 늘려 가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돌아보다

오늘 아내의 교육자료를 읽어보다 우선적으로 후배가 떠올랐지만 내 자신 또한 아내의 남편으로써의 내 모습을 투영해 봐야한다. 아내와 난 현재까지 겉으로 드러난 문제는 없다. 서로 간 잘못되고 아쉬운 점이 있었드래도 이것 또한 평범한 부부들의 일상이라고 여기며 물의 자정작용(自淨作用) 처럼 각자가 자정(自淨)을 하며 지내왔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판단이다. 그동안 아내에게 나에 대한 불만이라든가 내가 고쳐야할 생활습성등에 대해서 진솔하게 물어 본적이 없다. 이 세상에 슈퍼맨이나 슈퍼우먼은 없다는 자기합리화로 무관심했던 아내의 불평을 오늘 한 번 들어봐야겠다. 근데 내 마음이 슬며시 불안해 지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