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의 독서
나른한 오후의 독서에는 소설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소설은 우리의 삶과는 다른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여 마음을 치유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유머와 지식정보가 풍부한 소설가 최민석의 산문이 읽고 싶다.
소설이 필요할 때
흔히들 삶이 진부하고 지리멸렬할 때 소설을 읽으라고 한다. 그럼, 어떤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 나에게 딱히 정해진 소설은 없지만 선택의 시너지를 위해 오래전에 샀던 책이 있다. 치료사들의 북테라피인 <소설이 필요할 때> 였다.
6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은 의학 편람에 가깝다. 버림을 받았을 때, 비난받을 때, 자주 인터넷을 사용할 때, 너무 자주 쇼핑을 할 때 등등 상황에 맞는 소설들을 추천해 놓은 책이다. 심지어 섹스를 너무 많이 할 때는 <에덴의 악녀>,<여자들>을 읽고, 섹스를 너무 적게 할 때는 <제이콥 드 조에의 천 개의 가을>을 읽으라고 추천한다.
감정을 들여다보는 독서
나는 평소 역사와 과학이 배경인 인문서를 읽지만, 센치한 기분에는 도록의 그림을 감상하거나 詩를 낭독한다. 저자의 삶이 궁금할 때는 산문을 읽고, 연애 세포가 그리울 때 소설을 읽는다.
하지만 오늘은 소설 장르보다도 유머와 지식정보가 풍부한 소설가 최민석의 산문이 읽고 싶다. 최민석은 나의 전작주의 작가의 한 사람인데 최근 출간된 신간이 없다. 조만간 남미 여행기가 출간 예정이라는 소식이 있기는 하지만.
최민석 작가의 산문
최민석의 문체는 미문이 아니지만 방대한 지식정보에 기본기가 잘 다져져 있다. 문장 하나하나에 어디서 그런 비유를 생각해 내는지 감탄하며 읽는다. 유머 또한 식상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유머 뒤에는 자본주의 현실에서 작가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는 궁핍함이 서려있다.
최민석 작가의 페르소나
‘나의 서른여덟’ 이라는 산문을 읽다 보면 주변에 오버랩이 되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편의점이나 마트의 계산대에서, 아무 생각 없이 카드를 휙 던지듯 건네는 것이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 대해 가슴 아파한다. 카페에서 커피가 뜨거우면 어떻게 하느냐는 동생과의 대화에서도 그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은 별거 아니니 식혀서 먹는다는 쪽이고, 동생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니 미지근하게 새로 해달라는 입장에 다소 놀라워하는 타입이다.(나도 최민석처럼 식혀 먹는 타입이다)
복잡한 개인 역학
자신은 타인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성격이다 보니 말 한마디도 조심하게 되고 가끔은 별것 아닌 것에도 신경이 쓰여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성격이라고 했다. 즉, 자신이 너무 유난을 떠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는 언뜻 지질하고 구구절절한 못난 남자의 이야기 같지만 매너를 지키고 정직하게 산다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물론, 정직하게 산다는 것에 대한 회의가 일기도 한다.
내부 갈등과 복잡성
나는 타인에 대한 배려, 공중도덕과 매너는 지킨다. 짜장면 한 그릇은 미안해서 주문배달을 못 시키고, 동네 서점 앞에 있는 교보서점에 갈 때는 단골 주인의 눈에 띄지 않게 뒷 문으로 돌아 들어간다. 하지만 무례한 사람에겐 똑같이 대하는 타입이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피장파장 이판사판 합이 여섯 판이네 뭘! 하면서 씁쓰레한 웃음만을 허공에 날리곤 한다. 그래서인지 포커페이스가 아닌 겉으로라도 의연한 모습의 이미지가 풍기는 사람이 부럽다. 하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봄날의 따스함이 풍겼다는 공자보다 가을의 서릿발 같았다는 맹자를 더 마음에 들어 한다. 숫기에 대한 일종의 나의 콤플렉스일 것이다.
각설하고, 커피를 벗 삼아 나른한 오후를 깨울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펼친다.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는 절판이 되어 《꽈배기의 맛》과 《꽈배기의 멋》으로 재출판되었다.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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