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삿갓과 사피오 섹슈얼의 매력
비트겐슈타인, 슈뢰딩거, 파가니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자뻑과 일탈 속에서도 인류에게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내가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업적 외에 다른 또 하나가 있다. 놀 건 다 놀고, 할 건 다 했던 모습이다. 이들은 비록(?) 여성편력과 츤데라의 까칠함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사피오 섹슈얼적인 아우라를 좋아한다.
비트겐슈타인, 슈뢰딩거, 파가니니의 일탈과 업적
비트겐슈타인은 음악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유명한 교향곡이나 피아노 소나타 정도는 휘파람으로 연주할 정도의 음악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금수저였던 그의 전공은 음악이 아니었다. 자유분방한 생활과 은둔을 하며 철학을 택했다.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비트겐슈타인은 포로로 붙잡힌 수용소 안에서 자신의 철학을 정리한다. 후일 완성된 이 철학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된다.”로 마무리되는 <논리철학논고> 였다.
파가니니는 작곡 외에도 완벽한 비르투오소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명연주자였다. 배틀을 좋아하고 자뻑이 심했다. 성난 관객을 피해 연주 중에 무대 천정으로 몸을 피할 정도였다.
슈뢰딩거는 호텔에서 묘령의 여인과 한 달을 지내며 은둔을 했다. 그 와중(?)에 어려운 양자역학의 파동방정식을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김삿갓의 음풍농월
인류에게 기념비적인 업적까지는 남기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도 내가 좋아하는 음풍농월의 주인공이 있다. 방랑시인이라 불리었던 김삿갓이다.
시골집 가는 길에 화순을 지난다. 평소에는 눈길이 가지 않는 화순적벽 이정표가 가끔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김삿갓의 <회향자탄>을 읊조리며 운전을 한다. 음악을 들으며 운전을 하듯이 말이다.
김삿갓은 조선 후기의 시인이라 일컫는다. 조부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가족과 인연을 끊고 방랑을 했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발휘했다. 그의 시는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풍자적이며, 때로는 감동적이다.
김삿갓의 마지막 유랑지 화순적벽
평생을 떠돌이로 살았던 김삿갓도 세월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어느 날 우물에 비친 자신의 하얗게 센머리를 보고서 삶의 종착역이 다가옴을 느꼈다. 김삿갓은 평소 화순 적벽강을 가고 싶어했다. 적벽강은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오는 적벽강과 똑같은 이름이었다. 훗날 김삿갓은 적벽강을 마지막 유람하고 57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김삿갓이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화순 종명지(終命地)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에는 김삿갓 초분지가 있다. 훗날 그의 아들에 의해 영월의 김삿갓 생가로 이장을 했기에 지금은 풍화된 비석만이 황량하게 남아있다.
‘날짐승도 길짐승도 제 집이 있건만 나는 한평생 슬프게 살아왔다. 짚신에 지팡이 끌고 천 리길 떠돌며 물처럼 구름처럼 가는 곳이 내 집이었다는 김삿갓. 그는 가정적으로 낙제점의 가장이었지만, ‘돌아가자니 어렵고 머무르기도 어려워’ 라는 시구를 보면 가족에 대한 양심(?)은 있었나 보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김삿갓은 해학시로,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으로, 파가니니는 음악으로, 슈뢰딩거는 물리학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다. 그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미화된 이미지를 감출 수는 없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모두를 즐겼다는 그들에게 나 또한 부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세월은 가고 없지만 음풍농월의 풍류를 유유자적 살다 간 김삿갓. 그의 흔적은 바쁜 현대인에게는 일탈의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정비석의 <소설 김삿갓>의 마지막 부분에 인용된 詩를 좋아한다. 김삿갓의 平生詩라고 하는 <회향자탄>이다. ‘사람도 하늘도 원망할 일이 못 되어 해마다 해가 저물면 나 혼자 슬퍼했다’는 회향자탄을 읊조리며 나의 삶을 반추해 본다.
김삿갓의 회향자탄
▶ 회향자탄(懷鄕自歎)
날짐승도 길짐승도 제 집이 있건만
나는 한평생 혼자 슬프게 살아왔네.
짚신에 지팡이 끌고 천리길 떠돌며
물처럼 구름처럼 가는 곳이 내 집이었다.
사람도 하늘도 원망할 일이 못 되어
해마다 해가 저물면 나혼자 슬퍼했다.
어려서는 이른바 넉넉한 집에 태어나
한강가 이름있는 고향에서 자랐노라.
조상은 부귀영화를 누려 왔던 사람들
장안에서도 이름 높은 가문이었노라.
이웃 사람들 생남했다 축하해 주며
언젠가는 출세하리라 기대했건만
자랄수록 운명이 기구하여
오래잖아 상전이 벽해처럼 변했소.
의지할 친척 없고 인심도 각박한데
부모마저 돌아가셔 집안은 망했도다.
새벽 종소리 들으며 방랑길에 오르니
생소한 객지라서 마름 애달팠노라.
마음은 고향 떠돌이 여호 같고
신세는 궁지에 몰린 양같은 나로다.
남쪽지방은 자고로 과객이 많은 곳
부평초처럼 떠돌아가기 몇몇 해던고.
머리 굽신거림이 어찌 내 본성이리오
먹고 살아가기 위해 버릇이 되었도다.
그런 중에도 세월운 속적없이 흘러가
삼각산 푸른 모습 생각수록 아득하네.
떠돌며 구걸한 집 수없이 많았으나
풍월 읊는 행랑은 언제나 비웠도다.
큰 부자 작은 부자 고루 찾아다니며
후하고 박한 가풍 모조리 맛보았노라.
돌아가자니 어렵고 머무르기도 어려워
노상에서 방황하기 몇 날 몇 해이던고.
신세가 기구해 남의 눈총만 받다보니
흐르는 세월 속에 머리만 희었도다.
시를 짓는 사람들은 한 고향사람이니
막걸리 석 잔으로 잠시나마 근심을 잊는다네.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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