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마지막 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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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파리 여행(제10화)

파리의 마지막 밤

파리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먼 거리 지하철 이용을 제외하고 오늘도 걸어서 걸어서 파리 시내를 돌았다. 시내 곳곳엔 파리 테러의 여파로 군인과 경찰의 불심검문과 경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이벤트는 취소되고 거리는 한산했다. 대신 비루한 집시의 모습이 안 보여서인지 치안은 좋아 보였다.

내일 저녁 비행기로 출국이다. 비록 일정 없이 파리에 왔지만 막상 와보니 가볼 곳이 많다. 첫날 파리의 부정적 이미지와는 다르게 점점 파리의 매력에 녹아든다. 내일 오전 오후의 마지막 동선을 그려본다. 에밀 졸라의 거리와 김환기 화백과 김향안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세느강의 생 루이 섬에 가야 한다.

여러 예술인이 잠들어 있는 파리의 3대 묘지도 가보고 싶다. 그들의 묘지명을 보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상상할 것이다. 남은 시간에는 프랑수와 미테랑 국립도서관을 찾을 예정이다. 하지만 테러 여파로 입장이 여의치 않을 것도 같은 예감이 들지만.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밤 9시경, 캐리어를 정리하는데 TV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방영하고 있다. 소설과 영화로 충분히 보아온 스토리지만 파리에서 프랑스어로 더빙되는 화면을 보니 색다른 느낌이 든다. 캐리어 정리를 잠시 보류하고 보르도 와인을 마시며 침대에 누워 영화를 감상한다.

나는 매디슨 카운티(로즈먼)의 다리 영화를 감상할 때면, 추억의 편린이 흩날리는 허구의 사랑 속으로 피천득의 수필인 <인연>을 떠 올린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주부 프란체스카와 사진작가인 킨케이트의 나흘간의 짧았던 중년의 사랑이 이와 같았다. 일생을 못 잊어하면서도 만나지 못한 이들은 22년간 생이 다하는 날까지 나흘간의 사랑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고이 간직했다. 현실과 도덕이 부딪쳤던 안타까움이 앞서는 답답한 사랑이었지만 그래도 그들만의 인내의 사랑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되었다.

유리코와의 추억

어찌 보면 그들의 마음 한켠에는 매디슨 카운티 다리의 추억이 있었기에 흰 나방이 날개짓 할 때면 메마르고 푸석한 감정에서 벗어나, 설렘의 애틋한 감성을 느끼는 작은 행복을 누렸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킨케이트와 프란체스카 같은 사랑의 추억은 없다. 대신 피천득과 아사코 같은 비슷한 추억이 있다. 서른 즈음에 도쿄로 직장을 옮겼을 때, 에어로빅 인스트럭터였던 유리코와의 추억이다.

체육대학을 졸업하고 윤기가 흐르는 긴 생머리의 유리코는 나와 10살 차이였다. 피천득과 아사코가 10살 차이였기에 수필 속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아사코는 백합처럼 시들어 가고 있었지만, 유리코는 백합처럼 청순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미소,えがお>에 대해서 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종이 접기가 특기인 유리코는 여러 가지 손재주를 보여주었다. 한국으로 귀국하던 날, 나는 한복 차림의 인형과 조지 윈스턴의 <겨울> CD를 유리코에게 건넸고, 유리코는 나에게 고양이 인형과 사진대를 주었다. 이듬해 나는 아내와 맞선 후 결혼을 했다.

가끔 진부한 생활이 이어질 때 사람은 과거를 회상한다. 이럴 때 그리움을 동반한 추억이 아스라이 밀려오는 순간이 있다는 것도 지난 청춘의 선물이 아닐까 한다. 오늘도 추억에 잠겨 두 눈이 잠기려는 데, 언제 내 마음을 가로챘는지 ‘흥~ ‘ 하는 아내의 질투 서린 야유가 들린다. 황급히 태연을 가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보는 데 곁에는 아무도 없다. 환청이었나 보다.

세느강

파리 밤의 감성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가 끝났다 캐리어 정리를 마치고 파리에서 보르도 와인의 마지막 잔을 기울이는데 박인환의 시 <얼굴> 한 편이 마음을 스친다.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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