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취업 6년의 비하인드 스토리
일본 취업 6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구상하는 중에, 창문너머 은행나무가 시야에 들어온다. 푸릇했던 이파리에 어렴풋이 가을의 색채가 드러난다. 조석으로 차가운 바람마저 불어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은행나무에 가을이 찾아들 때면 가끔씩, 일본의 오테마치(大手町,おおてまち)에 끝없이 늘어선 은행나무 가로수가 떠오른다. 길 위에 구르는 은행잎을 밟으며 일본 출입국사무소에 비자(VISA) 연장을 하러 다녔던 시절이 생각난다.
일본 취업 IT개발자의 비하인드 스토리
일본의 헤이세이(平成, へいせい) 시대의 시작인 1989년에 처음 현해탄을 건넜다. 이후 헤이세이 시대의 막바지에 접어든 201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도쿄에서 직장 생활을 하였다. IT 개발자로서 체류 6년간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쌓였다. 우리 국민 정서상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에서 좌충우돌했던 직장생활을 회고해 본다.
더불어 일본 취업자를 위한 취업 경험과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매주 연재하고자 한다. 연재를 하다 보면 이야기 순서는 늘어나겠지만 일본 취업을 우선으로 시작해볼까 한다. 많관부~~~요.
일본 취업을 위한 절차
일본 취업 IT개발자의 업무
나의 일본 취업 에피소드
장정일의 꿈
소설가 장정일은 시골의 하급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싶어 했다. 아침 9시에 출근하고 오후 5시에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 씻고 드러누워 새벽 2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 어린 시절의 꿈이었다고 한 적이 있다.
나의 경우는 남극 세종기지에서의 근무를 꿈꾸었다. 그곳에서 1년 정도 프로그래밍을 하고 왔으면 좋겠다 싶어 세종기지 월동대원 모집광고를 여러 번 검토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꿈이 현실에서는 값싼 낭만의 꿈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한국을 떠나며
장강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읽은 적이 있다. 파격적인 제목에 비해 스토리는 그다지 파괴적이진 않았다. 소설의 주인공은 생활의 편리함은 느끼고 살지만, 생활의 질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생각한다. 결국 낯선 행복을 위해 호주 이민을 떠난다.
주인공이 떠나며 했던 말, “내가 태어난 나라지만 싫어할 수도 있잖아?“라는 한마디가 귓전을 맴돈다. 근데 꼭,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도 이것저것 다 내려놓고 한국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겠는가? 마음이 답답해지는 현실을 잘 표현한 소설이었다.
나의 일본 취업 분위기
80년 대 후반, 우리 사회는 노사운동 바람이 불었다. 비록, 정치적이고 종교적 도그마에는 무관심했지만 빈한한 샐러리맨의 사회에 대해서는 마냥 뒷전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맹자의 ‘항산 항심’의 의미도 몰랐던 20대였지만, 전봉준의 죽창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다.
100여 명의 직원 선두에 나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하지만 내가 서야 할 자리를 잃었고 주홍글씨를 새긴 나를 받아 주는 곳이 없었다. 결국, 거창하게는 디아스포라의 심정으로 현해탄을 건넜다. 일본의 거품 경제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결코
“한국이 싫어서”가 아닌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하는 Job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