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착각을 품고 살아가는가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서점에서 북서핑을 하는데 <남편을 모자로 착각한 여자>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패러디한 제목이라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책을 들어 펼쳐보니 만화로 그린 신경정신과 환자의 이야기였는데 허구가 아닌 실제였다.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다. 만화를 덮고 실제 올리버 색스의 책을 찾아 구입해 읽어보았다.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는 자신이 진료했던 환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엮었다. 인지장애를 겪는 환자가 아내의 머리를 모자로 여기고 손으로 머리를 잡아 당겨 모자처럼 쓰려고 하는 실화였다. 치매도 아니고 뇌손상을 입지도 않았는데 이런 증상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람이 착각을 하면 어느 정도까지 착각을 할까. 인지장애를 겪지 않는 정상인도 가끔 착각을 할 때가 있다. 나도 큰 착각을 한 적이 있었다.
정경화와 정명화
결혼 전으로 기억한다. 퇴근길 시내버스에서 정경화 연주회 포스터를 보았다. 날짜를 보니 그날 연주회가 있는 날이었다. 정경화의 연주를 광주에서 볼 수 있다는 흥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곧장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문예회관으로 갔다. 평소에 비해 입장료가 비싸긴 했지만 정경화라는 네임밸류에 비해서 저렴하다는 생각으로 공연장에 들어갔다.
지정석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으며 차분히 프로그램을 펼치는 순간 씁쓰레한 미소를 흘리고 말았다. 그날 연주회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아닌 그의 언니인 첼리스트 정명화였기 때문이었다. 이름이야 비슷해서 착각할 수 있겠지만 첼로 사진이 큼지막하게 찍힌 포스터를 보고도 왜 첼로를 바이올린으로 보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수수께끼다.
정트리오의 맏이인 정명화는 국악 연주에도 일가견이 있는 첼리스트다. 그랬기에 정경화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정명화의 연주도 설렘이 있는 음악회였다. 정명화는 첼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연주했다.
인터미션 후에는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35번 2악장”을 연주했다. 이 곡은 북망산으로 떠난 큰누님이 아주 좋아했던 곡이기도 했다. 지금도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35번 2악장의 구슬픈 바이올린의 멜로디를 감상하면 큰누님 생각과 그날의 착각이 떠오른다.
착각과 오해의 인간관계
세상사에는 착각과 오해가 있다. 자신의 착각이야 웃어넘길 수 있지만 착각에 의한 오해는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남긴다. 오해 때문에 사랑을 잃기도 하고 친구를 잃기도 한다.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타인의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라지만 왜 잘 안 되는 걸까. 음악을 감상하듯이 성의껏 들으면 될 텐데 말이다.
나도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타입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