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휴게소에 어리는 시린 추억


섬진강 휴게소에 어리는 시린 추억

차창 밖 어둠 속으로 섬진강의 고요가 느껴진다. 고속버스는 섬진강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섬진강휴게소에 내리면 네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두 사람은 곶감을 팔 던 아주머니 얼굴이고, 두 사람은 그리워도 만날 수 없는 아버지와 조카의 얼굴이다. 섬진강 휴게소에 어리는 시린 추억이다.

섬진강 휴게소

지난 추운 겨울이었다. 그날도 출장길에 심야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광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새벽 한 시가 넘은 무렵, 섬진강휴게소에 잠시 내린 나는 화장실 입구에서 곶감을 팔고 있던 두 아주머니를 보았다.

겨울밤의 추위를 견디고자 목도리로 얼굴을 온통 감싸고 두 눈만 내놓은 채 곶감을 파는 모습이었다. 밤이 깊은 시각이기에 휴게소도 편의점을 제외한 간식을 판매하고 있지 않았다. 추위에 떨며 곶감을 파는 아주머니가 너무 안쓰러워 곶감을 살까 하다 그만두고 말았다.

두 분 중에 한 아주머니에게만 산다는 게 어려운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추위에 떨고 있었던 두 아주머니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도저히 그대로 떠날 수가 없었다. 두 아주머니에게 각각 곶감을 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데 그만 버스가 출발을 하여 결국 그대로 광주로 돌아오고 말았다.

아버지의 시린 추억

곶감을 볼 때마다 나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생각한다. 건축공사를 하던 아버지는 휴일이 없이 일만을 하고 살았다. 아마도 7남매를 모두 키울 때까지 그렇게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건축공사의 특성상 육체노동을 많이 하기에 그토록 건강하다고 여겼던 아버지가 검진결과 간경화증으로 판명이 났다. 자신의 병명도 모른 채 터미널에 앉아 있는 아버지께 버스에서 드실 간식을 물었더니 곶감을 사달라고 했다. 평소, 식사와 약주 외에 간식을 전혀 하지 않았던 아버지였기에 의외의 주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시골로 내려가고 불안한 상상만을 하고 있는 데, 큰방 집 아주머니께서 대뜸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이 죽게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찾는 음식 중에 하나가 곶감이라네…”

그로부터 아버지는 수개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조카의 시린 추억

2남 5녀의 남매 중에서 형님은 1남 2녀를 두고 있었다. 형님의 외아들이었던 조카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순천에서 관세사(關稅士) 시험을 준비했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처음 응시를 하여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관세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졸업 후에도 와신상담 관세사 시험 준비에만 몰두를 했다. 시력이 좋질 않아 병역면제까지 받았던 터라 시간상으로는 여유가 있었다고 생각해서 나 또한 조카의 취직에 대해서 크게 조바심을 갖지 않았다.

일 년 여의 준비 끝에 두 번째 관세사 시험을 치렀다. 그 간 조카의 노고도 치하하고, 마침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 준비를 하는 누나댁의 외조카와 함께 조카 둘을 광주로 불렀다. 이제 조카들도 각각 24, 5세의 청년이 되었기에 술을 한잔씩 마시며 세상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작은아버지로서, 외삼촌으로서 두 조카를 데리고 처음으로 칵테일바에 갔었다. 여성 바텐더가 있는 곳이었기에 조카들은 쑥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조카들이 아직 술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는지 칵테일 몇 잔이 들어가자 금세 얼굴이 붉어지고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느껴졌다.

조카들과 술을 마시며 나는 속으로 대견스러웠다. 집안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믿음을 느껴졌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 자리가 큰 조카와의 마지막 자리가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큰 조카는 시험 발표가 한 달 후에 있기에 그동안은 섬진강휴게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 간 시험 준비하느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한 친구도 만나고 책도 읽으며 휴식을 취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형님네의 어려운 생활상을 떠올려보고는 세상물정도 체득할 겸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를 맺었다.

새가  된 조카의 청춘

그리고 일주일 정도 지났다.  이른 아침에 형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조카가 잠시 형님 집에 왔는데, 안면 근육이 실룩거리는 등 이상한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평소 건강하던 조카의 모습을 떠올리며 인근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보라 하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평소처럼 출근을 하였다.

조카는 인근병원에서 1차 검사를 받았지만 병명은 모른 채, 큰 병원을 가보라는 의사의 권유로 오후에 광주로 왔다. 아내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얼마 후,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직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불안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퇴근 후 병원으로 갔다. 병원문을 들어설 때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던 조카가 그 사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채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뇌염증세로 최종 판정을 받은 그날 밤, 조카는 혼수상태가 되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미 세균이 뇌 속으로 퍼진 것이다.

2주 정도 중환자실에서 보내 던 조카는 결국 뇌사에 빠져 약관 25세의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형님으로서는 하나밖에 없던 외아들을 잃은 것이다.

섬진강휴게소의 겨울밤 상념

섬진강휴게소에 내릴 때면 언제나 밤하늘을 본다. 그리고 아버지와 조카를 생각한다. 나는 아버지 살아생전 휴일 없이 일만 하는 당신의 모습이 너무도 싫었다. 그 싫어했던 모습을 지금은 휴일도 없이 내가 반복하고 있다.

조카 또한 학교 졸업 후 1년 6개월을 오직 공부에 매달려 가족과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한 채 저 세상으로 떠났다.

사람이 모든 것을 이룬 후 맞이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 시간까지 얼마가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룬다 하더라도 바쁘다는 상황 때문에 흘려버린 人情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조카를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

차가운 겨울 밤하늘에 시리우스별이 유독 반짝인다. 오늘 밤에는 약관의 나이에 生이 스러졌던 아픈 상흔의 조카가 그리워진다. 조카를 생각하며 전인권이 부른 <새야>를 허밍으로 흘린다. 맥주를 한 잔 해야겠다.

새야 – 전인권 노래 듣기

<새야>   노래 전인권

“새 이제 떠나거라
너의 하늘로
너만의 자유로운 세상으로

새 이제 날아가라
너의 하늘로
너만의 아프지 않은 세상으로
……
날아가라 뒤돌아 보지 말고
날아가라 내 생각하지 말고
……
날아가라 날아라 날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