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유럽여행 이야기 [먼 북소리]
9년의 기다림, 봉인 해제된 <먼 북소리>
2016년 1월 5일 오후 03:13 나의 SNS 메모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여있다.
“나의 책장에서 일부러 읽지 않은 몇 권의 책 중에 카찬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와 하루키의 <먼 북소리>가 있다. 두 책을 읽고 나면 여행의 최면에 걸려 일탈을 할 것 같아서 일부러 읽지 않고 있다.”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완독 했다. SNS에 메모를 한 지 9년이 지나 완독을 한 것이다.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300여 페이지 정도로 생각했는데, 500페이지나 되는 긴 여행에세이였다.
![무라카미 하루키 여행에세이 [먼 북소리] 2 무라카미 하루키 여행에세이 [먼 북소리] 1](https://ajebe.co.kr/wp-content/uploads/2025/03/Image_20250313_0002-1024x486.jpg)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 소설을 집필하다
<먼 북소리>는 1986년부터 1989년까지 30대 후반의 하루키가 유럽을 여행하며 쓴 일상에세이다. 이 기간 동안 소도시를 이동하며 번역과 소설을 집필했는데, 이때 쓰인 소설이 하루키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였다.
하루키의 시선으로 담아낸 풍경과 사람들
1980년 대는 지금처럼 인터넷 정보가 활발하지 않은 때였다.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정보가 일상적이었기에 여행정보가 귀했던 시절이었다. 여행 계획을 세워도 예약 여부에 따라 수시로 여행 일정이 바뀌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키는 아내와 함께 유럽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낯선 환경에서 느끼는 주변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하고, 때로는 냉소적이면서도 관찰자적인 시선으로 이야기했다. 또한 여행지에서 접하는 음악과 영화, 책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는 데, 특히 클래식에 대해 자신의 감상평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먼 북소리>의 내용은 어느새 40년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지금의 상황과는 여러 가지로 다른 부분이 많을 것이다.
하루키가 꼽은 유럽인 특징
<먼 북소리>의 내용 중, 그리스에 여행 오는 배낭족 이야기가 있다. 그중에 하루키가 느낀 나라별 분위기가 흥미를 끌었다.
①독일인 : 세계에서 가장 여행을 좋아한다.
②캐나다인 : 세계에서 가장 한가하다.
③오스트레일리아 : 캐나다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한가하다.
④영국인 : 대개 얼굴색이 나쁘다.
⑤프랑스인 : 행동은 민첩하지만 냉소적인 인상이다.
⑥네덜란드, 벨기에인 : 약간의 붙임성이 있다.
⑦북유럽인 : 터프함을 뺀 느낌으로 공상에 잠겨있는 듯한 얼굴이다.
하루키의 이탈리아 3대 불만
<먼 북소리>의 배경은 주로 이탈리아가 많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에 대한 인상을 냉소적으로 상세히 기술했다. 특히, 로마에서는 자동차에 도난장치를 설치하지 않으면 창을 깨고 카스테레오를 훔쳐간다는 현실에 절망했다.
하루키의 이탈리아에 대한 3대 불만은 ①심각한 우편제도 ②열차의 연착 ③소매치기를 꼽았고, 이탈리아를 40자로 특징을 적는 다면 “수상이 매년 바뀌고, 식사하는 소리가 시끄럽고, 우편 제도가 극단적으로 뒤떨어진 나라”라고 쓰겠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컴플레인을 하는 것보다, 속으로 삭이는 것이 본인의 정신 건강에 좋다고 했는데, 하루키의 성격을 간접적으로 헤아리게 했다. 그나저나,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먼 북소리>를 읽고 하루키에게 유감의 컴플레인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2016년 SNS 메모에서는 <먼 북소리>를 읽고 나면 일탈의 여행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하루키가 하도 이탈리아를 부정적으로 서술했기에, 잠시 이탈리아 여행 계획을 망설이게도 했다. 나의 여행의 목적은 관광보다는 답사 위주가 크다. 따라서 하루키가 말대로 무질서하고, 사람이 붐비고, 서비스질이 낮으면 여행 의욕이 떨어지겠다는 망설임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여행에세이 [먼 북소리] 3 무라카미 하루키 여행에세이 [먼 북소리] 2](https://ajebe.co.kr/wp-content/uploads/2025/03/20250313_135157-1024x633.jpg)
이탈리아 여행을 꿈꾸는 이유
나의 SNS에는 이탈리아 여행 포커스가 이렇게 적혀 있었다.
①피렌체의 보티첼리와 브루넬레스키, 밀라노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베네치아의 티치아노
②로마가 사랑한 다섯 미술가에서 나보나 광장의 두 남자인 베르니니와 보로미니
③성 베드로 성당의 미켈란젤로
④판테온에 잠든 라파엘로
⑤콘타렐리 예배당의 카라바조
⑥영화 맹룡과강에서 이소룡이 묘가수와 거닐던 티볼리 공원
⑦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인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의 플로리안 카페에서 생맥주
먼 북소리가 들려오는 그날까지
나와 아내는 유럽여행을 함께 떠난 적이 없었다. 각자의 여행 스타일이 달랐다. 나는 나 홀로 배낭여행이었고, 아내는 항상 직장의 단체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여행 스타일을 바꿔야 할까 보다.
아내가 은퇴하면 이탈리아 여행만큼은 함께 떠날 예정이다. 인증샷이나 답사가 우선이 아닌, 아내와 손을 잡고 동네 산책하듯이 느긋하게 다녀오는 여행을 우선으로 말이다. 나에게도 이탈리아에서 먼 북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날이 어서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