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스치는 서러운 야곡


가을이면 스치는 서러운 야곡

가을이면 으레 스치는 시편이 있다. 서러운 한을 품고 사라져 간 여류시인의 시편이다. 황진이를 필두로 조선의 여자로 태어난 한 맺힌 허난설헌의 시편, 이화우로 흩날리는 애달픈 매창의 시편, 기생의 신분으로 평안감사의 은총에 감격스러워했던 김부용의 시편이다.

황진이의 시편

이들이 남긴 시편들은 한결 같이 애증에 젖어있는 서러운 야곡이다. 그중 황진이의 시편은 현대적 감각으로는 은유의 밀당으로 여겨지는 “사랑밖에 난 몰라” 다. 초등학교 때 황진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어린 마음에도 향기 나는 아름다운 이름이라 생각했다.

훗날 기생의 의미를 알게 되고 황진이가 기생이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가졌던 ‘실망의 기억’을 언젠가 영화 속에서 비슷하게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라는 詩人 유하 감독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볼 때였다. 권상우가 짝사랑하는 한가인이 다른 남학생과 입맞춤하는 것을 보고 뒤돌아서는데, 내 가슴이 예리한 칼로 스~윽 베인 듯한 아픈 공허감이 느껴졌다. 황진이의 ‘실망의 기억’이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남자의 사랑에는 욕망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가 있듯이 황진이의 사랑에서도 욕망이 느껴진다. 사랑과 욕망은 불가분의 관계인가 가식의 관계인가를 골똘히 생각할 때가 있다. 

에릭 시걸의 <러브스토리>나 전 세계 연인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라스트 콘서트> 같은 신파조 영화에는 욕망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대신 장군이나 예술가의 남성 세계에는 욕망의 표현이 많다. 정복과 예술의 야망 뒤엔 사랑의 욕망이 자리한다는 진부한 배경으로.

로마의 장군과 패왕별희

로마의 장군 카이사르는 ‘여성을 사랑하되 매춘을 하지 마라’ 했고, 유방과의 일전을 앞둔 항우는 전쟁터까지 따라온 우희를 마지막으로 지켜준다. 패왕별희로 알려진 항우와 우희의 이별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심금을 울린다. 욕망이라는 표현은 자칫 남자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여겨지기 쉽지만 남자에게도 순애보는 존재한다.

김학준과 최용신의 사랑 이야기

심훈의 소설인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의 실제 인물인 최용신을 생각한다. 나아가 그녀의 약혼자였던 김학준과 그의 아내를 생각한다. 김학준은 26세로 타계한 약혼녀 최용신을 잊지 못한다. 훗날 그는 자신의 유언으로 최용신 옆으로 자신과 아내까지 나란히 세 사람의 무덤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김학준이 타계했을 때 그의 아내는 최용신 옆에 그의 무덤을 만들어 줬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무덤은 자식들이 따로 모셨다고 한다. 오래전 안산의 샘골교회에 있는 그들의 묘소를 찾아가보았다. 그때 나는 최용신과 김학준의 순애보적 사랑 보다도 김학준의 아내가 먼저 떠올랐다.

남편의 무덤을 다른 여인의 곁에 둔 결심은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헤아렸다. 서글펐다. 그들의 못다 한 순애보가 아름답다고 해야 할지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 답답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가을 여류시인의 서러운 야곡

매창과 유희경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

조선의 문인 기생이었던 매창과 학자였던 유희경의 사랑을 떠올린다.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매창>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서울에 있고

그리워하면서 만나지 못하니

오동잎에 비 뿌리는 소리 애간장 끊누나.

<유희경>

매창의 애절함에도 ‘나는 한양 그대는 부안…’ 이라는 답시같은 유희경의 마음이 무심함인지 안타까움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유희경의 마음을 어렴풋이 짐작은 할 수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진다는 변명 같은 대답이나 어장관리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사랑의 상식과 에티켓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은 없다지만 사랑하면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은 존재한다. 그렇다고 이번 생은 글렀고,라며 탄식을 하기엔 미련이 남는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에게는 이들처럼 선문답으로 이어가는 사랑의 방법도 있으리라. 사랑의 욕망은 달랠 수는 있어도 누를 수는 없다.

사랑에는 상식과 에티켓이 없다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