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소개】얼빠진 구구단


 

【도서소개】얼빠진 구구단

[저자명] 이정희

[출판사] 해드림출판사

장난꾸러기 동심에는 평안함이 깃들어 있다

현대 예술은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 세계가 펼쳐집니다. 현대시도 마찬가지로 난해함이 느껴집니다. 어려운 은유와 비유는 선과 악의 경계마저도 애매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짧은 시를 읽고도 감상자의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너무 많은 생각은 미로를 헤매게 하지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자신의 시심을 탓하기도 합니다. 보는 대로 말하는 대로 느꼈던 유년을 그리워하면서, 날이 갈수록 동심과 멀어지는 자신을 향해 고개를 떨구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지난 시절을 애써 지우려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오염되지 않았던 동심의 세계가 있었으니까요. 그때의 동심으로 돌아가 지금의 마음을 정화시키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데는 동시만큼 좋은 예술이 없습니다.

얼음이 녹으면 뭐가 될까요? 물이 되지요. 그러나 ‘봄이 옵니다.’ 라고 대답하는 이도 있습니다. 누구의 대답일까요? 동심 가득한 어린이의 대답이지요.

학생들과 생활하는 교사는 오래도록 동심을 간직한다고 합니다. 바스락장난도 좋아하고요. 현직 교사인 이정희 작가님도 장난꾸러기와 같은 동심을 지녔습니다. 소녀가 아닌 소년의 동심이 더 느껴지는 작가입니다. 작가의 동시를 감상하다 보면 자연스레 구름과 별빛이 흐르는 저 하늘 너머의 유년을 회상하게 합니다.

이정희 작가님의 동시에는 평안함이 있습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녹아드는 평안함이지요.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미소 짓게 합니다. 작가의 동심이 전이되는 반가움에 계속 다음 동시를 읽게 합니다. 읽는 이의 마음은 벌써 유년의 추억에 서있는 것입니다. <얼빠진 구구단>을 감상을 하며 회상에 젖어 봅니다.

얼빠진 구구단

얼빠진 구구단 1매 평

[작품1] 쑥떡

냉동실에 들앉은
봄날의 꿈

해님
달님
꽃님

봄소식을 간직한 채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차가운 방에서

아직도 단잠을 자는
쑥떡을 깨우니
파릇한 기지개를 켜고
알싸한 하품을 토한다

개인화를 우려하면서 나 자신도 개인주의에 몰입합니다. 세상의 다양함을 인정하면서도 사람을 외면하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합니다. 세상과 사람에게 느끼는 피로감을 원천 봉쇄하기 위함이라고 합리화하면서 말입니다. 이기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에 마음 편할 리 없습니다.

냉장고에는 해님, 달님, 꽃님과 같은 다양한 식재료가 있습니다. 요리대에 올라 여러 식재료와 버무리면 진미(眞味)가 되지만, 냉장고 안에서는 발효도 되지 않는 사장(死藏)된 재료일 뿐이지요. 세상사도 이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작품2] 땅따먹기

돈이 없어도
내 땅을 가질 수 있어요

돌멩이 하나
손가락으로 튕기면

뼘 수만큼
내 땅이 됩니다

즐겁게 놀면
공짜 땅이 생기는데

친구들은 왜
놀 줄을 모를까요​

문명의 이기(利器)는 인간에게 편리함을 부여합니다. 대신 반대급부를 원합니다. 내 땅을 갖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에 모든 사람이 땅을 살 수는 없지요. 발을 딛는 세상은 땅 위지만 마음을 딛는 세상은 땅 만이 아닙니다. 온 우주가 마음의 땅이 되지요. 발을 딛는 땅에서 노는 것은 제한적 세상이지만 마음으로 우주에서 노는 것은 무제한의 세상입니다.

돈 없다고 자학할 필요는 없습니다. 땅 이외에서 살 곳을 찾으면 되지요. 산에서도 살고 바다에서도 살면서 말입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합리적인 취향을 찾아 사는 것입니다. 스스로 중심을 잡고 생각을 넓혀 사는 것이지요. 자신의 일상이 최선은 아닐지 언정 차선의 방식에서도 자기만족과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품3] 큰 인물 

걱정하는 엄마 말 안 들은 안중근의사
애국지사가 되었고

출가하지 말라는 아빠 말 안 들은 싯달타
성인(聖人) 되었대요

친구 말도 듣지 않아
위인 된 사람이 많으니

성인(聖人) 위인들은
남의 말을 듣지 않는가 봐요

자라나는 아이들도
부모 말을 잘 듣지 않으니

아!
나중에
아주 큰 인물이 되겠어요

공자는 유교를 강조했고 진시황은 법치를 강조했습니다. 유교와 법치 이전에는 풍습과 규칙이 있었지요. 풍습과 규칙은 행동에 방점을 찍습니다. 널 위해서라는 전제로 생각마저 울타리에 가두게 해서는 안 됩니다. 획일화된 생각과 행동은 진보할 수 없습니다. 갇힌 세상이 아닌 열린 세상에서 효율적인 능력을 발휘합니다.

한 때는 공부만이 대세였지만 이제는 재능이 대세입니다. 공부만 우등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운동 우등생, 노래 우등생, 춤 우등생, 기술 우등생 등 타고난 재능을 지닌 우등생이 많습니다. 공부도 하나의 재능에 불과하지요.

[작품4] 삼촌 미워

야! 설날이다
삼촌 고모 왔어요

아이는 신이 나서
떡국은 눈으로만 먹고

설레는 마음으로
세배 세배하는데

고모 지갑 열리네
아이 입이 방긋

삼촌 지갑 닫혔네
아이는 눈물이 난다

삼촌은 날 때부터
어른으로 났나 봐

어린 시절에는 삼촌, 고모 모두가 돈이 많은 줄 알았습니다. 그랬기에 삼촌, 고모에게 기대감이 컸지요. 자신의 기대감이 충족되지 않을 때는 삼촌, 고모를 미워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갈수록 양극화가 심해집니다. 개인의 능력과 환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지요. 어른이 된 지금도 어린 시절의 시선을 못 버릴 때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이해타산이 맞으면 마음을 열고 다르면 마음을 닫는 유아적 이기심이 나타납니다. 환경과 상황에 자신의 시선을 넓히면 닫힌 삼촌 지갑에도 이해의 정을 느낄 수가 있지요.

얼빠진 구구단

[작품5] 얼빠진 구구단

수들이 모여서
줄을 선다

짝수 줄
홀수 줄

구구단에
짝꿍 수가 붙었다

싫은 짝꿍
좋은 짝꿍

그때부터 엉긴 수는
싸움을 한다

사팔 이십 사
육팔 사십 육

맞는지 틀린지
뭣도 모르고

사팔 이십 사
육팔 사십 육

종일토록 외워도
틀렸다 하네

4와 6에
따라붙은 8

팔은 이름대로 살지 못하고
얼이 빠져서

구구구 구구구
비둘기만 쫓네

세상에는 진실과 거짓이 존재합니다. 수많은 오해와 착각도 존재하고 같은 대상을 보고도 호불호가 나뉩니다. 요지경 이전에 다양함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좋은 사람만 만날 수는 없고 싫은 사람과도 만나야 합니다. 자신의 주장만을 선으로 인정하는 이전투구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세상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합니다. 이것을 운명이라고 하던가요.

마치며

세상이 힘들 때 자신의 팔자를 한탄합니다. 나약한 인간이라고 치부합니다. 팔자를 비관하면 얼빠진 구구단처럼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정방향을 보고도 구구구 소리에만 따라가는 비둘기처럼 말입니다.